<충청포럼>이하형·대덕대학 교수(경찰·공무원 양성계열)

우리는 한번 뛰어들면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상황에 종종 직면한다. 특정 신용카드나 항공사를 이용하면서 포인트가 쌓일수록 더 많은 혜택에 유인되어 다른 카드사로 옮기기가 더 어려워지며, 한 직장에 들어가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회사로 전직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특정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다 만족스럽지 않아 다른 회사의 유사 제품을 다시 구입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중복적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한 달에 15만 원 하는 체육시설 이용료가 연 100만 원이라 해서 더럭 지불했다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고, 1개에 1000원 하는 생필품이 대형마트에서 2개에 1000원 한다 해서 구입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 버려야만 했던 쓰린 기억도 있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된 후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해도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선택을 탓하는 것이 고작이며, 행정부처의 정책을 믿고 선뜻 행동했다가 정책이 바뀌어 낭패를 본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는 일단 관계가 고착되면 어느 한편의 힘이 약해짐은 물론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용카드사가 엄청난 포인트 혜택을 강조하면서 회원들을 대량으로 모집한 후, 할인혜택이나 부가서비스를 줄여도 대처할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한 직장에 오래 있을수록 전직하는 것이 더 어렵기에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전자회사나 자동차 회사는 한 번 구매한 소비자가 기기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변기기나 소모품에 높은 가격을 매길 수도 있다.

연회비를 낮춘 체육시설의 회원들이 많아질수록 불편이 가중되는 회원들은 이용 빈도를 낮출 것이며, 이에 따라 운영 책임자는 연회원을 더욱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생필품의 유통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폐기처분하는 것보다는 가격을 대폭 낮춰 판매하는 것이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며, 이때부터 유통기간의 문제는 구입한 소비자의 몫이 된다.

관계의 고착화를 위해 교섭을 제시하는 측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금전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용카드사는 신규 회원 가입 때 많은 초기 적립 포인트를 주거나 연회비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유능한 신입사원에게 좋은 근로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기기의 가격을 낮게 책정 해 소비자를 유인하려 할 것이다. 체육시설은 이용기간이 길어질수록 회비가 낮아질 것이며, 생필품은 유통기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가격이 낮게 제시될 것이고, 정치인들은 현란하고 그럴듯한 공약들을 제시하여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선택 상황에서는 선택받으려는 자보다 선택하려는 자의 힘이 우위에 있기에, 선택받으려는 자는 온갖 유인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선택한 순간 이후부터 관계가 고정화되면서 선택한 자의 힘이 일반적으로 약화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고객은 관계가 고착화되기 전에 보다 유리한 교섭 조건을 제시하거나 또는 아예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선택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 하고, 불만족스러우면 선택당시의 상황이나 사람(정치인) 또는 회사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선택의 책임은 선택 당시의 조건을 수용한 나에게 귀속되는 것이며, 그에 따른 불이익 감수도 부메랑처럼 나의 몫이 되어 돌아온다.그러므로 선택 상황에서 제시된 조건이 좋다고 하여 곧바로 뛰어들기 전에 다시 한 번 살피면, 교섭상의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거나 또는 후회의 강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예전의 광고 문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며, 선택 상황에서 제시된 조건에 뛰어들기 전에 살펴야 함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이하형&amp;amp;amp;amp;middot;대덕대학 교수(경찰&amp;amp;amp;amp;middot;공무원 양성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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