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지난 해 11월에, 국회 외교 통일 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의 대변인 한 사람이 국무총리 정운찬에게 <마루타가 뭔지 아시죠?>라고 묻자 정 총리는 <지금 전쟁 포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다. 박 대변인은 다시 질문하기를 <마루타가 왜 전쟁 포로입니까? 731부대가 뭔가요?>라고 물었다. 정 총리는 <항일 독립군인가요?>라고 반문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의원들이 정 총리에게 대정부 질문할 때는 문답식 질문을 해서 몰아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는 말도 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나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이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서 대기업 사원으로 들어가 직장생활을 했다. 귀국한지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친구와 내가 광화문에서 만나 차를 마셨는데, 우리가 광화문 사거리를 가로질러갈 일이 생겼다. 그는 차를 타고 갈 생각을 했으나, 바로 길 건너이기 때문에 내가 지하도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광화문에 지하도가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지만, 서울에 온지 십년이 넘은 사람이 광화문 사거리에 지하도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 총리가 제731부대를 항일독립군인가요 라고 묻는 말이나, 광화문 사거리에 지하도가 있느냐고 묻는 말이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할 것이다. 연관성이 있어 언급한 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상식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뜻이다.세계에서 몇 위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대학이라고 하는, 저 위대한 서울대학교의 총장까지 지낸 분이 어떻게 역사적인 사실에 그렇게 무지한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자란 학문이란 한 우물만을 파다 보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가 있다. 대학 총장이 마루타라든지 제731부대에 대해서 몰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가 총장으로 있을 때는 그것을 몰라도 괜찮다. 그러나 정 총장이 아니라 정 총리가 되었을 때는 몰라서 안 된다.

국무총리란 직책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정승의 자리이다. 그렇게 권리와 명예가 있는 만큼 국민에 대해 책임과 의무가 있어야 한다. 총리는 의원들이 문답식 질문을 한다고 무슨 퀴즈 풀이 하느냐고 반박할 것이 아니다.군대 질문을 하자 국방부 장관에게 물으라고 하고, 독도 문제를 묻자 외교 통상 분야라고 빠져나가지만 말고, 모르면 배우고 파악해서 성의 있게 대응하고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의 질문은 곧 국민의 질문이지 그것이 어느 정당이나 한 개인의 질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교통부 장관에게 물라 하고, 쌀 한가마니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면 그건 농수산부장관에게 물으라고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은 광화문 사거리에 지하도가 있는지 없는지 알 필요가 없는 그 친구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 정현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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