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나에게 늘 스트레스와 연관되어있다. 내가 수학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자 정말로 수학은 벽이 되었다. 담쟁이도 넘어서지 못할 절벽처럼 내 앞에 버티어 섰다. 그리고 나는 평균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과목에 안간힘을 써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장에 가서 물건사고 거스름돈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셈은 끝난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또 숫자가 내 발목을 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던데.

통계의 미학(최제호 저)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미루고 외면했던 뜨거운 감자를 입에 물었다. 통계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느낌을 피해 재미있는 사례에 눈길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통계숫자 속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에 의지해서 판단의 갈등을 해결하고 명쾌한 신뢰감을 선택했던 것이다. 특히 국물의 간을 맞추기 위해 국 모두를 마실 필요가 없다는 행간에 밑줄을 그으며 통계의 간을 보았다.

대수의 법칙을 적용하기위해 국자로 국을 휘휘저어 줌으로서 모집단과 표본 간에 차이가 없도록 하고 한 모금만 마셔보는 것으로 국의 간을 맞추는 방법, 그것이 일부를 통해 전체를 판단하는 방법이라는 말에 무릎을 친다. 수박이 익었는지 보기위해 수박 전체를 갈라보지 않고도 삼각조각을 내서 수박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박장수가 장난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해당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면 전체를 볼 수가 없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말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에 대통령 후보를 경상도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만 조사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만 조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하고 전국적으로 그 후보가 당선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과 같은 오류가 생긴다.

중국에서 어느 지역의 인구조사를 했는데 2,800만이라는 인구수치가 조사 되었다한다. 그 후 몇 년 후에 다시 조사해 보니 1억5천만이라는, 무려 5배의 차이가 있었다.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은 것일까? 아니다. 인구수에 따라 돈을 내는 과세용으로 측정 했을 때는 2,800만 명이 되고 인구수에 따라 돈을 받는 기아구제 목적으로 조사했을 때는 1억5천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조사 대상자들과 조사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치를 과장하거나 감소시키려는 인센티브를 갖고 있다. 몇 년 전에 농지를 구입했다. 그 농지를 판 농부는 그 땅이 들판에서 토질도 가장 좋고 위치도 좋아 최곳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근처에 더 이상 그보다 좋은 논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이 다시 소작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가을 추수 끝나고 이렇게 말했다. 매년 홍수에는 물도 차고 땅 심도 안 좋아 다른 땅보다 적은 소작료를 내야겠다고 말이다. 눈도 깜짝 안하고.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통계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숫자 계산에 대한 무지 또는 오용이 거짓말 통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격이 다른 두 대상을 단순히 수집된 자료를 더해서 평균 내는 것은 숫자 장난이 될 수도 있다.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별적으로 수소에서도 산소에서도 물이라는 특질은 발견 되지 않는다. 하지만 둘이 만나면 어김없이 물을 만들어 낸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면 그 성질이 달라지는 화학적 마법도 생기는 것이다. 통계의 미학을 읽고 나서 상당부분 통계라는 단어에 대한 냉기가 사라졌다. 오히려 친밀해진 그 의미에 재미를 보탠다. 이 선거철에 나는 수많은 통계자료를 접할 것이다. 여론조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어떤 방법으로 실시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하겠다. 그리고 화학적 마법 같은 새로운 정치판도 기대해 본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