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에서 진보적인 여성운동단체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 여성단체로부터 20주년 기념행사의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공간은 달리하지만 활동의 내용들이 비슷한 자매단체이기에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무슨 말을 할까 호흡을 가다듬어 보았다.

20년 전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꿈을 꾸었다. 시작은 작고 초라했지만 희망을 품고 내딛는 발걸음은 힘차고 가벼웠다. 새롭고 의미있는 도전은 시간이 흐르며 값진 열매를 맺었고, 그 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은 매력있고 역량있는 여성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 곳은 항상 왁자지껄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활력이 넘치는 곳,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삶의 에너지를 맛보게 하는 곳,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댈 수 있고 품 넓은 누군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어도 흉 될 것 같지 않은 넉넉함이 묻어나는 곳으로 소박한 정이 오가면서 회원들의 마음의 쉼터가 되는 곳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만 스무살이 지나면 이제 어른이 된다. 세상에 태어나 걸음마를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성년이 되었을 때의 놀라움,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숱한 세월의 아픔을 견디어낸 인고의 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보살핌 덕택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잘도 지내왔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가야할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인간이 중심이기보다 물질이 우선시 되고, 생산과 효율성을 중시하다보니 속도에 민감해지고 환경파괴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태라서 살아가기가 점점 버거워진다. 가는 곳마다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땅과 강은 파헤쳐져지고, 개발의 광풍이 휘몰아쳐 전 국토를 벌집 쑤셔대듯 뒤흔들어 놓은 상황이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꿋꿋하게 헤쳐 온 스무 살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 성년이 된다는 것의 책임감을 함께 느끼자고 얘기하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동지의 입장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면서, 이젠 우리가 행하는 여러 활동들이 사회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지 두려움이 앞선다. 결과에 대해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고, 선택의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엄청난 무게감을 가슴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식물이 자랄 때에도 적당한 온도와 햇볕이 필요하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다 자란 것 같은 성년이 되었어도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삶의 방향이 비뚤어지지 않는다. 같이 숨쉬고, 같이 웃고 울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역사의 물줄기가 제대로 흘러가도록 막힌 물꼬를 새로 트는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손에 손 맞잡고 부드럽게, 유연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멋진 친구들이 다른 지역에도 있어 마음 든든하고 행복하다. 다시한번 20주년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가는 길 멀고 험하고 힘들어도 서로의 등 다독이며 함께 가자고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 하련다.

▲ 김경희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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