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주연

예쁘고 도시적인 외모를 가진 배우 염정아가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에서 운동권 청년을 숨겨주는 미술교사 역할을 맡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외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염정아는 그 영화로 올해 열린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는 로맨틱 코미디 '내 생애 최악의 남자'(감독 손현희ㆍ제작 ck픽쳐스)로 돌아왔다. 10년간 우정을 지켜 오던 친구와 '이틀 밤 실수'로 대충 결혼을 한 뒤 해프닝을 벌이는 철없고 유쾌한 여자 역할이다.

분위기 바뀐 역할만큼이나 개인생활에서도 많은 점이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염정아는 현재 임신 5개월째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배가 약간 나온 상태였고 얼굴에서는 행복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밝은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시나리오 고를 때는 쉽게 말해 '말이 되는 것'을 고르거든요. 너무 튀거나 허술하면 안 되는 거죠.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상황 같지만 이야기가 그럴 법했어요. 코미디가 더해져 유쾌하고요."
그는 1991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으로 뽑히고 포토제닉상까지 받으면서 인형 같은 외모를 널리 알렸다. 곧 tv 드라마 출연을 시작한 그에게는 주로 외모에 부합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이 아니라 연기에 더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은 나이 서른을 넘겨 본격적으로 영화판으로 발을 뻗은 뒤다.

"tv 드라마 할 땐 선택의 폭이 좁았어요. 제가 봐도 제 얼굴이 좀 깍쟁이 같거든요. 그런 역할이 들어왔죠.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면서, 특히 '여선생 여제자' 하고서 좀 다른 눈으로 봐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는 다른 역할이 들어왔어요."
연기활동을 하면서 여러 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많은 배우들이 작품 속 캐릭터에 몰입한 뒤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고충을 호소하지만 염정아는 옷을 갈아 입듯 역할을 입었다 벗는다. 여성들이 우스개로 "예쁜 여자는 뭘 입어도 예쁘다"는 말을 하듯이 영화 속 염정아는 갈아입은 역할마다 그만의 매력으로 소화해냈다.

"그게 참 이상해요. '장화, 홍련'을 하고 나니까 무서운 역할만 들어왔어요. 그러더니 '범죄의 재구성' 끝나고서는 섹시한 역할의 시나리오만 들어오던 걸요. '여선생 여제자' 이후에는 또 코믹한 역할만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영화가 끝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요. '오래된 정원'은 꼭 한 번 하고 싶던 역이었고 다른 영화보단 오래 가긴 했지만 역시 금방 털어냈어요."
앞으로 무슨 역할을 맡고 싶고 인생에서 어떤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지 물을 때마다 염정아에게는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에 잇따라 "글쎄요" 또는 "모르겠어요"란 답을 내놓던 그는 민망해졌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실은 계획을 세워놓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연기도 사실 언제까지 할지 모르는 거죠. 저는 뭔가를 입으로 약속하는 게 싫어요. 입바른 소리를 잘 못해요. 중요한 건 말보다 행동이잖아요. 직접 보여 주는 게 좋아요. 앞으로 뭘 하고 싶으냐고요? 가정이 우선이에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려는 마음이 가장 절실하고 그러다 보면 일도 열심히 해야죠."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는 염정아는 이번 영화에서도 '망가지는' 이미지에 개의치 않고 연기를 했다. 스트립 댄서들이 선보일 만한 '봉춤'과 가수 박진영의 '허니' 춤까지 췄다고 한다. 시나리오상 섹시하기보단 어설프고 코믹한 동작이다.

"살림도 안 하고, 폭음하고, 결정적으로 다른 남자한테 눈을 돌리는 최악의 여자 역할인데 아주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예요. 저는 관객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관객이 받아들일 것 같은 범위 안에서 연기를 해요. 그 안에서 재미있게 놀면서 연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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