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먼저 부팅 시킨다. 방에 불을 켜고 나를 설명하기위해 포장했던 옷들을 훌훌 벗는다. 자루를 뒤집어쓰듯 거칠 것 없는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컴퓨터를 마주한다. 서둘러 집에 오는데도 불구하고 입고 꿰맨 옷처럼 시간은 언제나 빠듯하다.

나의 밤은 내게 특별하다. 모두 소진되어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에너지가 밤을 통해 충전 된다. 실컷 자고난 후의 포만감과 같다. 직업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그럴듯해 선택한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게 되었다. 나의 서재에 늘 꽂혀있는 책처럼 언제든지 켜기만 하면 되풀이 되어 나오는 영상은 충분히 연속극을 대신 할만 했다. 하루 밤 지나고 나면 그만큼 단단해 지는 내 기억을 확인했다. 각각의 뉴런에 독립적으로 저장되어 있던 조각 지식들이 시냅스를 통해 연결되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올라 왔다. 그저 듣고 또 듣는 일만으로도 기억이 생생해 지면서 책 한권이 그림책처럼 선명해졌을 때 쯤 주경야독에서 전화가 왔다. 접속 횟수만으로 보면 시험을 통과하기에 충분한 것 같으니 마음 턱 놓고 시험을 보라는 것이다. 시험지를 받아들자 알고 있는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보여 마음이 바빴다. 내 눈을 의심했다. 만점짜리 과목도 있었다. 당연히 직업상담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 이후 나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에 별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밤이 되면 강의를 듣는 일로 즐거움을 얻는다. 알고 보니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힘든 좋은 강사들의 강연이 저가로 인터넷사이트에 많이 올라와있었다. 몇 천원이면 인생을 한방에 바꿀 법도 한 명사의 강의도 들 을 수 있다. tv방송 다시보기를 통해 '다큐프라임'도 보고 '극한 직업'도 보고 '아침마당'도 본다.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슈를 함축시킨 '세리영상보고서'도 본다. 맛을 보다, 들어보다, 느껴보다, 해 보다, 달려보다, 그려보다 등 수없이 많은 행동이 '보다'라는 말로 표현이 된다. 책을 눈으로 보는 일을 귀로 들어보는 일로 대체하면서 노안 때문에 멀리 했던 독서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처음 영어를 시작했을 때, 나는 겨우 내 이름과 내 나이 정도를 더듬거리며 말 할 뿐이었다. 하루 15분씩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화상으로 마주보며 영어 회화를 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양해지면서 하루 일상을 더듬거리며 설명할 수 있었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 다는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니터를 향해 말하고 듣고, 몸짓으로 표현하며 영어를 익힌다. "비오는 날 술 한 잔 어때" 라는 친구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야독'의 유혹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만나는 미녀와의 짧은 수다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낮 동안 치열하게 시간과 다투어 '주경'하고 가수면 상태가 된 밤에 '야독'을 통해 또 다른 블루오션을 향한다. 인터넷 안에 있는 수많은 나의 멘토들을 통해 나는 밤이면 다시 에너지를 추스른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은 날도 시낭송 사이트를 열어 놓고 나면 서서히 차오르는 에너지를 경험한다. 그것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다. 헐렁해져서 이리저리 새나가는 뇌의 기억을 조이는 일은 반복뿐이라 생각한다. 단지 클릭 하나로 무한 반복이라는 선물은 안고 내 기억이 응답할 때까지 계속되는 '야독'은 밤 시간의 고독도 치유한다.뮤직 사이트에서 클래식을 듣는 일도 내게는 공부다. 인터넷을 통한 주경야독, 형설지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 유인순 도림평생교육원 원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