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선거에서의 '바람'

지난 6월 한 달 우리국민 모두는 뜨거웠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위해 일한다고 나선 6.2지방선거 후보자를 골랐고, 그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곧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2010월드컵 경기. 모든 국민이 밤잠을 설쳐대며 한마음, 한목소리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의 태극전사들과 환호와 탄식, 기쁨과 안타까움을 같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으로 유쾌한 도전을 했고, 그 도전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며 벅차고. 황홀하고, 가슴 찡함을 느꼈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입은 이렇게 우리에게 왔다.

축구와 선거에서의 '바람'

축구와 선거가 닮은 게 있다면 둘 다 '바람'이 한 몫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바람'은 판세를 결정짓는 흐름으로 조직과도 일맥상통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물론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평가, 특히 충청권에서 불어닥친 세종시 역풍이 밑바닥에 깔려있지만 "일단 현 여당이 싫다"는 반여(反與)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집권당은 손 한 번 쓰지못하고 완패했다.

출마자는 물론이고 표심을 행사한 유권자조차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줄은 몰랐다"는 말이 나올만큼 그 바람은 강력했고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새삼 보여줬다. 당을 떠나 인물과 정책, 공약평가에서는 괜찮다는 점수를 받았던 후보들조차 이 바람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축구 역시 '바람'이 이기게도 하고, 지게도 한다. 특히 우리처럼 감성적인 국민들은 더 그렇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이 바람은 여지없이 불었다. 선제골을 먹었을 때는 휘청거렸고, 그걸 만회한 후에는 질풍같은 공격과 짜임새 있는 수비로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아르헨티나전의 경우 근소하게 나가다 실점이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며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상대 팀에 해트트릭이라는 전리품(?)까지 안겨줬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우승 후보인 강적 포르투갈과의 일전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며 전반전을 끝냈으나 후반전 들어 실점이 계속되자 그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인물' 선택에 대한 보답

이런 '바람'속에 그래도 '인물'이 있기에 경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불어닥칠지 모르는 그 거친 바람속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있었기에 우리는 첫 원정 16강이라는 당초 목표를 일찌감치 이루고,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달릴 수 있었다. 비록 단 한 경기에도 출전치 않았지만 벤치에서 묵묵히 후배들을 감싸안고, 위로하며 자신의 경험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고참, 더 넓은 물에서 내로라하는 세계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해외파 선수, 누군들 안 힘들까마는 그라운드에서 후배들보다 더 뛰며 상대방을 밀착방어한 선배 선수들이 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행복했다.

한나라당 참패라는 '6·2선거 바람'속에 한나라당 간판으로 선전, 당선된 이필용 음성군수가 "반여(反與)바람 속에 유권자들이 정당은 다른 당을 택하면서도 후보는 나를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군수가 자신의 말처럼 이번 선거를 '바람'속에 '인물'을 택한 걸로 받아들인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인물값으로 유권자 선택에 보답해야 한다. 그저 유권자들이 고맙고, 지역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교과서적인 마음가짐만으로는 모자란다. 내세운 공약 이행은 두말할 것 없고, 지역발전에 온몸을 던지겠다는 약속은 하늘이 쪼개져도 지켜져야 한다. 그 인물값은 4년 후 군민들이 매길 것이다.

▲ 박광호 중부본부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