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불러주기'부터 실천

<충청일보>대중언론을 접하다 보면 하루가 멀게 발생하는 흉악한 사건들이 우리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히 청소년 범죄가 그러하다. 청소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은 없는 것일까? 청소년 범죄사건 보도의 마지막에서 아나운서들은 한결같이 상투적인 어조로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청소년 범죄를 예방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라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들 개개인이 과연 나 자신과 나의 가족들을 제외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해마다 학기 초에 경험하는 일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떠들지는 않지만 뒷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유난히 회피하고 강의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을 간혹 보게 된다.

교수자의 책임으로서 학습자인 그들을 상담하다 보면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듣는다.

모 방송사의 개그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우리나라의 현실 사회 상황을 비꼬아 "1등만이 기억되는 xxx 세상"이라고 외쳤던가?

단지 학습 능력이 다른 학생들보다 다소 부진하고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들로부터 핀잔을 받았고, 학교에서는 교사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돼버린 그들은 집단 속의 외로움으로 왕따 의식을 느꼈던 학생들이다. 그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에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에 많은 부담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교수자 입장을 떠나 인생의 선배로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까 생각하던 중, 강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관심 있게 불러주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의 이름이 불리는 것은 고사하고 교사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던 교실 환경과는 달리, 강의실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에, 자신의 이름을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자각한 그들은 뒷자리에서 앞자리로, 강의에 대한 무관심이 관심으로, 그리고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관심어린 눈 맞춤이 이뤄지게 됐다.

우리 청소년들 모두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개성과 능력이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타인들의 독선적인 기준에 의해 일방적인 방향으로 내몰려 1등과 꼴찌로 선별된다는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계산이며 모순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적어도 한 가지 일은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과도 같으며 우리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주위의 잘못된 환경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무시를 당하게 된다면, 그들은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며,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커다란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공허함 속에서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며 인간미를 상실한 '잃어버린 세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 하여금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청소년 범죄가 만연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만 보이는 막연하게 추상적인 결과만을 기준으로 청소년들의 능력을 섣불리 차별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지도 편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으로 그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도 해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