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출신에 청주고 졸업

민선5기 지방자치시대가 출범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이시종 충북도지사를 비롯해 각 시장·군수들이 일제히 취임식을 갖고 집무에 들어갔다. 새 지방자치시대가 본격 열린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주민 생활과 밀접한 단체장들이 의욕적으로 민선5기를 시작하면서, 안정을 바라는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40% 이상이 기소돼 중도 낙마가 이어졌던 민선4기 단체장들에게 염증난 주민들이 민선5기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 보다 큰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새로 선출됐든, 재선이 됐든 단체장들은 힘겨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 잠을 설쳐가며 지혜를 모으는 등 의욕적으로 민선5기 출범을 알리고 있다.

충주 출신에 청주고 졸업

이 같은 상황에서 충북도청 내부에서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가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충주 출신이거나 청주고를 졸업했으면 '진골(眞骨)', 충주 출신에 청주고를 나왔으면 '성골(聖骨)'이고, 이도 저도 아니면 '왕골'(돗자리나 방석을 만드는 데나 쓰일 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뜻)이라며 스스로 자위한다고 한다. 성골은 신라에서 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신분이다. 성골은 진덕여왕까지 왕을 독식했고, 이후에는 진골 출신이 왕을 세습했다. 성골과 진골이 구별된 이유가 확실치 않은 가운데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성골은 부계(父系)와 모계(母系)가 모두 순수한 왕족이고, 진골은 한쪽만 왕족인 것으로 구별됐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각인돼 있다. 역사에서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신라의 신분제도가 21세기 공직사회에 부활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워낙 말을 잘 만들어내고, 연줄 대기에 능숙한 공직자들의 구태한 행태가 민선5기 출발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아 찝찝하다 못해 안타깝다. 갖다 붙이기 선수인 그들의 쓸데 없는 상상력이 공무원의 대다수인 '왕골'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돌아가게 생겼으니 씁쓸함을 영 떨칠 수 없다.

'역사 속 망령' 잠재우는 게 우선

충북도는 재선이 유력시됐던 정우택 전 지사의 패배에 따른 충격을 넘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분위기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등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도민들의 지지를 받은 새 도지사가 선출된 게 40일이 넘었고, 취임한 지도 10여일이 지났음에도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좇기보다는 새 단체장과의 지연·학연·혈연을 놓고 역사 속의 신분제 타령을 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행태가 충북도 뿐 아니라 단체장이 바뀐 각 시·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거나, 극히 낮은 상황에서 바뀐 지역의 일부 공직자들이 새 단체장과의 친분 있는 인사를 찾는 등 연줄을 대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하니 앞 날이 걱정이다. 단체장들의 의욕은 뒷전인 채 선거 과정에 누가 누구 편에 섰는 지에 관심이 더 많아 첫 인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인사에서 중용된 개개인의 면모를 보면 줄서기를 제대로 했는지, 못했는지, 단체장과의 어떤 인연이 있는 지 여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계산에서란다. 성골·진골을 따지고, 줄서기나 연줄을 확인하기 위해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공직자들이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다.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된지 15년이 된 지금 성숙기에 들어갔어야 맞지만 오히려 구태가 심화되고 있으니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 1000년 신라의 찬란한 역사를 무너뜨리는 데 큰 몫을 한 게 신분제와 줄서기가 아니었는가. 지역 발전도 좋고, 경제 활성화도 좋지만 되살아나는 '역사 속의 망령'을 잠재우는 게 우선 순위일 듯 싶다. 그 것은 당연히 민선5기 단체장의 몫이고 책임이다.

▲ 김헌섭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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