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화 한국교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amp;amp;amp;amp;quot;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amp;amp;amp;amp;quot;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오래된 노래라 잊고 지냈는데 얼마 전 참석한 결혼식에서 축가로 다시 들으니 새삼 예전 가요의 부드럽고 고운 결이 느껴졌다. 이 노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경우에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amp;amp;amp;amp;lt;비둘기&amp;amp;amp;amp;gt;에 등장하는 비둘기는 사뭇 다르다. 작은 아파트에 평생 살아도 그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중년의 은행 경비원이 어느 날 화장실에 가다가 발견한 무서운 동물이 바로 비둘기였다. 비둘기가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엄청나게 무섭다고 느낀 주인공은 급기야 자살까지 결심하게 된다. 평화가 아니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비둘기라니 역시 소설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얼마 전 필자의 오랜 친구 중 하나가 대학에 취직하려고 지원서를 내는 일이 이제는 지겨워져서 포기하겠노라고 연락을 해왔다. 학위 받은 지는 벌써 12년째 접어들고 같이 학위를 받은 남편은 이미 정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또는 훨씬 나중에 학위를 받은 남자 연구자들도 이미 대부분 대학에 자리를 잡은 터라 우울함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화 마지막에 친구는 여자로서 교수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데 운도 좋다며 &amp;amp;amp;amp;quot;여교수는 비둘기&amp;amp;amp;amp;quot;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

노래에 나오는 비둘기처럼 여교수가 남교수에 비해 평화롭다는 뜻일까? 대부분의 여교수가 남교수에 비해 보직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으니 그 말일 것도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에 나오는 비둘기처럼 남교수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일까? 홍일점으로 지내면서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슈퍼우먼 여교수들이 많으니 그 말일 것도 같다.

불현듯 &amp;amp;amp;amp;quot;비둘기집 원리&amp;amp;amp;amp;quot;가 떠오르고 제 3의 의미가 생각난다. 비둘기집 원리는, 비둘기 수가 비둘기집의 수보다 많으면 한 비둘기집에 두 마리 이상의 비둘기가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는 아주 간단한 수학적 원리이다.

현재 분야마다 다소간 사정은 다르지만, 일부 계열을 제외하고는 대학원생의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여성 학위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연구실적을 포함한 객관적인 자료도 잘 갖추고 강의능력도 뛰어난 경우가 많으니 대학에 채용되는 여성의 수가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직도 여교수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많다. 또한 여교수 한 명을 이미 채용했다면 더 이상 여교수를 채용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거나 더 채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대부분의 여교수는 상징적인 존재이거나 유일한 존재로 살아간다.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목표제라는 제도는 이러한 우리 대학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 제도 덕분에 2001년 8.5%에 그쳤던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이 2005년 현재 10.7%로 증가하였다. 매년 신규 채용이 이루어질 때마다 대학 인사위원회에는 채용목표제와 관련된 지침이 내려가고, 여교수가 없는 학과에서는 암암리에 압력을 받는다. 지원자 중에는 영락없이 여성이 포함되어 있거나 다수가 여성이니 그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합리성과 민주성에 어긋난다고 비난 받고 역차별 논란을 일으키는 제도이지만, 이리 저리 지원서 들고 고전하는 여자 후배들을 보면 이름도 이상한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목표제가 더 강력하게 시행되기를 바라게 된다. 무엇보다 채용 과정을 주도하는 남교수들이 비둘기집 원리를 받아들여서 두 명 이상의 여교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좋겠다.



이경화 한국교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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