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김혜경 시인ㆍ한국문인협회 회원

1080배를 하면 내 안에 부처를 모실 수 있을까. 부처 한 분 심중에 모시고자 산사를 떠돌아 보지만 산문을 나서는 순간 매번 부처를 놓고 왔음을 느낀다. 시끄러운 마음속에 부처를 모시고자 했던 이기심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자매처럼 믿고 아끼던 친구가 야반도주를 했다. 고약하다. 빌려준 돈도 아깝지만 마음을 갈취 당한 것 같아 더 속이 쓰리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마음을 비워보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밤새 마음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새벽 산책을 나선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여운을 끌고 흐르는 범종소리가 들린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소리에 풀도 나무도 부스스 잠을 털고 깨어난다.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고 번뇌를 씻어주려는가. 여운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합장의 예를 올리게 되는 온후한 소리는 무엇인가. 매섭게 타이르다 따스하게 달래고 애절하게 마음을 울린다. 진동이 다른 두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떨려오는 맥놀이는 분명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독거리고 있다.

'덩~'하고 울리는 타음打音이 질책의 음이라면 '웅~'울어대는 여음餘音은 눈물로 쓰다듬는 따스함이다. '와우와우~'파도처럼 물결 져 내리는 맥놀이는 용서와 어울림의 미소이다.

자욱한 새벽안개가 걷힐 때까지 범종소리에 사로잡혀 있다. 냉정하게 돌아서 가야 할 길로 돌아서게 하지 않는다. 돌아설 듯 또 돌아보고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마음속의 맥놀이를 잠재우지 못했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나를 삼킬 듯 하다가도 한없이 가여워 품어 안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서로 다른 파장으로 떨리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할 것을 알면서도 내 것도 네 것도 손에 움켜쥐고 싶어 하는 허황된 욕심들과 그로인해 상처 난 가슴을 오래도록 쓸어 내려야하는 고통. 정복자의 오만함과 정복 당한자의 상실감. 사랑의 황홀함과 이별의 쓰라림. 탄생의 신비와 죽음의 절망. 완벽하게 갈라진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떨림으로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산다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혼합되어 하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파장을 갖고 맥놀이로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는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파장대로 살아가며 어울리는 것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못하는 것은 내 삶의 파장이며 끊임없이 남을 괴롭히는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의 파장대로 사는 것이다. 용서되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털어내고 마음 가벼워지고자 했던 것이 성급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붙여 아끼고 다독이며 사랑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면 용서하고 마음 비우기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 범종의 여음이 긴 것은 어쩌면 사랑도 미움도 모든 번뇌가 사라지기까지 오랜 마음의 질곡을 거쳐야함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한번의 타종으로 울리는 맥놀이도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소리와 소리가 부딪쳐 강하게 약하게 소멸하고 상생되며 그렇게 어울려야만 비로소 사르르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미명의 길은 빛과 어둠이 서로 다른 맥을 놓고 있다. 일렁이며 손잡고 어우러질 때 아침은 밝아 올 것이다.


김혜경 시인ㆍ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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