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김헌섭 사회부장

계속되는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해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파산 제도는 과도한 채무로 인해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채무를 변제하기 어려운 지급불능 상태에 있는 경우 채권자나 채무자가 법원에 신청,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금전으로 환산해 채권자들에게 평등하게 배당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이용해야 할 파산 신청 제도가 빚을 면제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니 묵과할 수 없다. 개인이나 법인이 파산하면 그에 따른 채권자들은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개인이든, 금융기관이든 그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된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권이 입는 피해도 결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켜 놓은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파산이 빚 변제 수단인가

그동안 개인이나 법인의 파산 신청이 법원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진 게 사실이다. 청주지방법원에 신청된 파산 사건은 지난 2003년 46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마다 크게 늘어 지난해는 4500여명이나 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한계 상황에 놓인 사람이 수년 사이에 급증한 게 아니라면, 이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 됐든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파산 신청자들에 대한 파산 선고율도 97%에 달해 파산 선고를 통해 빚을 변제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분별하게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는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 명의로 재산을 돌려 놓고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져지고 있다. 실제 부도를 낸 이후에도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실질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니고, 좋은 차 굴리고, 큰 집에서 버젓이 생활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법의 맹점을 교묘히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의 비밀이 아닌 공공연한 사실이다.

면책 범위 제한 필요

회생 가능한 채무자의 자력 회복을 돕기 위한 이 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해마다 신청 건수가 크게 늘어날 정도로 '악용' 또는 '남용'되고 있다는 게 금융연구원 이순호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다. 그가 보고서 '파산제도의 경제적 역할 및 제도 개선 방향'을 통해 파산 신청 전 의무적으로 빚 상환 노력을 증명토록 하는 등의 유인 체계 마련을 제안한 이유다.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법을 이용해야 할 파산 신청 제도가 단순히 빚을 면제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재량으로 빚을 줄여주는 '재량 면책'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청주지방법원이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 면책을 취소키로 한 것이다. 파산 선고를 받았더라도 보유 재산을 허위로 신고하거나 지나친 낭비로 빚을 지게 된 경우 면책 신청을 기각하는 등 파산 신청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다소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다행이다. 의무적으로 빚 상환 노력을 증명하는 체계 마련은 파산을 신청하고 보자는 무분별한 행위에 제한을 가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파산제도의 취지를 살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신청 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이후에도 철저하게 감시하는 등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도덕적 해이'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강도 높은 대책이 요구된다.


김헌섭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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