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변 사거리에 얼마전 대각선 보행로가 설치되었다. 사거리에서 대각선 쪽으로 갈려면 두 번의 신호를 받아야 했는데 한 번의 신호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걸어야 할 거리도 줄었지만 대각선 보행로를 걸으면서는 통쾌하고 유쾌한 생각까지 든다. 함께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흐뭇한 걸 보면 내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대각선 보행로를 걷다보면 사람중심 세상이 별게 아닌 것처럼 우리 동네가 너무 좋게 느껴진다. 당분간은 이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방자치는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꾸미기 노력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지방자치의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나 큰 규범적 가치여서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럽다. 그래서 지역에서 일어나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 스스로 해결해서 살맛나는 지역을 꾸미는 것이라는 자치(自治)에 충실한 주장을 필자는 선호한다. 물론 자치의 주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그 지역주민인 것은 분명하다.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방자치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동안 보여준 지방자치의 실상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리로 얼룩진 많은 대표자들과 방만한 예산운영은 자치단체의 파산 선언을 초래하는 등 최악의 수준으로 이끌었다. 광역자치단체 구의회 폐지까지 논의되었기에 또 다른 충격적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지역꾸미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민선 5기의 출발은 허약해진 지방자치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일부에서 볼썽사나운 모습도 있었지만, 새롭게 자리한 많은 자치단체장들이 보여준 낮은 자세와 섬김의 모습은 상쾌하다. 대전 대덕구청장은 취임식에 시민들을 초청해 직접 무릎을 끓고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열었다고 하고, 많은 자치단체장들은 취임식때 아무 것도 받지 않거나 축하화환 대신 받은 쌀을 지역내 소외계층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상징적 행동을 통한 이미지 형성이지만, 주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상징적인 이벤트와 달리 제도화된 변화도 찾을 수 있다. 충남 청양군수는 비서실장직을 폐지하는 대신 민의담당관을 설치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충청남도 직제표를 바꿨다. 변경된 직제표에는 '충청남도민'이 가장 큰 글씨체로 도지사위에 자리잡고 있다. 도민을 잘 모시겠다는 것이다. 권위를 버린 섬김의 모습에서 살맛나는 지역꾸미기가 기대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주민의 지역이동과 관련해서 '발로하는 투표'(voting with the feet)라는 가설이 있다. 주민들의 선호와 관계없이 행정이 이루어진다는 이전의 주장과 달리 주민들은 생활하기에 좋은 지역을 스스로 선택해서 이사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선호가 중시되는 행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주민을 모시기 위한 자치단체간 경쟁이 벌어지고, 경쟁과정에서 자치단체는 보다 건강해 진다는 내용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어떤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릴 것인가를 추론해 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지역주민을 섬기고 살맛나는 지역꾸리기가 진행되는 지역. 필자도 그 지역에 살고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 혼잡해 진다해도 그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처음처럼 자치단체장의 변함없음을 기대한다.

▲ 윤석환 충남도립청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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