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국가고시 합격자 발표가 있거나, 대학입시철이 되면 늘 내걸리는 축하 현수막을 보아오면서 지나친 축하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강원도교육청이 일류대 합격자 수를 알리는 과도한 축하 현수막을 해결해야 할 공식적 문제로 취급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저절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이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불만스러운 것으로 판단되어야 비로소 문제가 된다. 어느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건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심지어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어떤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어떤 사건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의 내용에는 도덕적 기대, 정서적 기대, 필요적 기대가 있다. 도덕적 기대는 '옳다-그르다'의 판단에서 옳은 것을, 정서적 기대는 '좋다-나쁘다'의 판단에서 좋은 것을, 필요적 기대는 '있다-없다'의 판단에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충족하는 '있다'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접하면서 그것이 세 가지 기대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라도 충족되지 않거나 불만족스럽게 느낀다면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현수막 문제를 공식적으로 취급하면서 강원도교육청이 제시한 이유를 살펴보면 현실과 기대가 불일치한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적으로 축하 현수막은 소수를 위한 것이지, 다수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낸 합격자를 축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수막은 합격한 소수,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성적은 비록 떨어지지만 최선을 다한 다수를 배려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다수와 소수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현수막 게시는 입시경쟁사회와 학벌사회, 출세지상주의를 조장해 학생들에게 상처와 소외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교육적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들은 이름을 게시하지 못한 학생과 부모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내 자식들의 출세와 독식을 천박하게 갈망해 왔던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라는 것이다. 좋은 성적에 앞서 사회를 지탱하는 올바른 교육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과도한 현수막 게시가 문제로 인식된 것은 '옳다-그르다'라는 도덕적 기대에 관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르다'라고 판단되는 옳지 않은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선택된 것이다. 상쾌한 것은 도덕적 기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도덕적 기대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희망의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펼쳐질 기세다.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며, 우리 사회의 갈 길이다.

▲ 윤석환 충남도립청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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