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창완ㆍ한남대 문창과 교수

아프리카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국제문학 심포지움을 위해서 8월 3일부터 11일까지 아프리카 케냐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자연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질서인가 하는 것을 느꼈다. 언뜻 보기엔 낯선 듯한 풍경들이었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많이 보았던 것들이었다. 건기의 초원에는 물을 찾아 모여 있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놀고 있었다. 떼를 지어 있는 누우, 얼룩말의 무리들은 매우인상적이었다. 평지에 가까운 초원과 상대적으로 껑충하게 키가 큰 기린은 여기 저기 서있는 나무 사이를 긴 목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또한 키가 큰 타조는 수컷이 앞장을 서고 네 마리의 암컷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돌아보면서 야생동물보호를 위한 인류의 노력이 아무리 그 강도를 더한다고 해도 항시 그것은, 단지 어떤 시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심포지움을 열어 자연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도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깨달았다. 케냐의 대 자연을 돌아보고 나서 내가 아는 자연에 대한 개념도 변화되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문학과 자연'을 논했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케냐까지를 아우르고 있었어야 했다. 또 케냐의 어느 젊은 시인 하나가 사바나의 자연을 토대로 한 편의 시를 쓰고, 학자들이 시와 자연의 문제를 논했다면 그것은 한국까지를 아우르는 하나의 행위였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근 공의 하나이고, 각각의 나라는 분할되어 개별성을 지니지만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의 둥근 공안에서는 서로가 '나비효과'로서의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가령 암보셀리의 대 자연이 이제 건기의 사막화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이미 있어온 자연의 일부가 둥근 지구라는 하나의 자연 속에 맞물리면서 이전의 기능과는 조금 다른 기능을 감당해야 할 시점으로 다가선 것이다. 또한 암보셀리에 가속화되고 있는 사막화현상은 이미 한국의 자연 변화와도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지구의 부분들은 서로의 영향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사파리에서 목을 빼고 서있는 기린 한 마리나 풀밭에 배를 깔고 누워 방금 잡아온 누우를 시식하는 숫 사자의 갈기를 스치는 바람이나, 꽁지 빠진 엉성한 모습으로 마치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걸어가는 '하이에나'의 모습은 이미 거기 있어온 것이다. 그 까닭으로 그 반대편의 어느 공간에서도 다른 동물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거대한 자연'이다. 이제 각 지역의 작은 부분으로서의 자연은 하나의 '큰 자연'인 지구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의 자연 변화는 곧 전체에 대한 영향과 자극으로 작용함으로써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가져와 악화된 자연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거대한 자연'에 기여하고 조화하고 적응해 갈 때야만 자연은 우리에게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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