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쓰고자 몇날 며칠을 망설였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다. 돌아보건대 나는 늘 산을 사랑했고, 나아가 경외하였고 산을 보고 희망을 가꾸며 살아온 때문이다. 나아가 산은 위대한 성자로서 그렇게 쉽게 가까이 할 수 도 없는 먼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 매력이 깊어서이다.

내가 월악산 영봉을 처음 바라본 것은 40여년전 일이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육군본부에 문관으로 근무하던 아버님이 다시 교직에 돌아오실 때 송계국민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은 연유이다. 거의 4년을 월악산 품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특히 가을엔 감나무 아래서 바알갛게 떨어져 내린 감을 줍고, 느푸르스레 익은 호두를 따내 흐르는 도랑물에 돌로 쳐서 알호두를 거두던 일이 어제 같다. 겨울이 오려하면 툭툭 삭아 떨어지는 삭정이를 주워모아 동생들과 땔감을 마련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 생활의 추억도 월악산이 내어준 것이다. 그 시절 마을 이장의 아들로 내 짝궁이었던 소년은 그 집 그 자리에서 결혼하여 아들낳고 지금은 월악나루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그 땐 왠지 월악산 영봉을 먼 그대로 바라만볼 뿐 저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계리 언저리를 지날 때마다 한번은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늘 안고 살았다. 드디어 지난 중추절 연휴, 교직에 있는 두 여동생을 채근하여 룸메이트까지 모두 여섯명이 월악산 영봉을 올라보기로 결정하였다. 워낙 높은 산(1097미터)이라 가다 내려오는 경우까지 상정하고 송계리 '자광사'에서 출발하였다. 거의 수직의 거대한 바위 영봉은 쉽게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돌계단 철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하여 세자매 모두 정상을 밟는 새 역사를 쓰게 되었다.

평소 500미터 정도의 산도 끙끙대던 동생들이 무슨 도움인지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정상에 오르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해냈다는 자신감에 서로들 기뻐했다. 하산은 덕주사 쪽으로 하는데 예상보다 험하기는 하지만 충주호가 그윽히 내려다보이며 주변의 형세가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의 알프스라고나 할까?

내가 그 높은 월악산 정상을 올라간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그토록 좋은 산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하고 보호하고 나아가 산이 주는 것을 배우게 할까 공연한 고민을 자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고 인내를 쌓으며 자연의 귀함을 깨닫고, 예술 그 자체인 산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tv라는 바보상자가 집집마다 더욱 커지며 아이들 눈을 붙잡고 있으니 걱정이다.

산은 말은 없으나 그 안에 무한한 보물과 오묘한 소리를 간직하고 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나무, 풀, 돌, 그리고 산이 들려주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는 이 세상 아무도 흉내낼 수 없으며, 세파에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 어른들이 경험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토록 그리운 낙원인 산을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알 리 없다.

주말이나 휴일이 오면 과감히 털고 일어나 자녀들을 데리고 산으로 떠나는 아버지는 얼마나 계신가?

산은 생명의 보금자리이고 더구나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 우리나라는 산을 잘 이용하면 실질적인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을까?

나는 산을 더욱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삶이 소중하고 더욱이 아이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도 산과 더 가까워지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한다.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하여 월악산! 그 달빛이 아이들 맘을 고루 비추고 이 땅에 태어남의 기쁨과 꿈을 한껏 키워주기를 산, 위대한 그대에게 기대어본다. 산을 아는 사람 그는 진정 인생의 승자이다.

▲ 박종순 회남초 교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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