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사운드가 뚜렷한 자기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브람스 스페셜' 공연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서울시향은 잘 다듬어진 목관과 안정된 금관을 바탕으로 풍부한 현악기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음색을 만들어냈다.

서울시향이 연이은 브람스 관현악 시리즈를 통해 기량의 안정화를 이루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리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콩쿠르 결선때 연주했던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자로 나서 일찍부터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연주회는 서곡 없이 곧바로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시작됐다.

브람스의 협주곡은 구조가 탄탄하고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흔히 '교향악적 협주곡'으로 분류된다. 서울시향은 제1바이올린 파트에 16명, 콘트라베이스 파트에 10명의 연주자들을 배치, 대교향곡을 연주할 때와 같은 규모의 대편성을 피아노협주곡에 적용했다. 이는 이 협주곡의 교향악적 느낌을 살려내기 위한 의도로 보였으나, 이것이 독주자에게는 다소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피아노협주곡 1악장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살아난 것은 좋았으나, 독주 피아노의 날렵한 움직임에 비해 오케스트라 연주의 타이밍이 뒤처지고 음색이 무거워 피아니스트가 마음껏 기량을 펼치기가 다소 어려운 상황을 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침착한 태도로 시종일관 오케스트라와 교감하면서 앙상블에 주력하는 한편 확신있는 터치로 악구 하나하나의 의미를 풀어나갔으며, 특히 3악장에서 감각적인 리듬을 살려낸 추진력 있는 연주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공연 후반부에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은 영웅적인 웅장함과 실내악적 섬세함을 모두 갖추고 있어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도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초반부터 청중을 압도했다.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브람스의 모토를 담고 있는 첫 세 개의 코드는 매우 강렬하게 표현됐고, 이후 파도처럼 밀려오는 풍성하고 윤기 흐르는 사운드는 브람스 음악의 열정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 3악장에 이르러 지휘자 정명훈은 템포를 늦추어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서울시향의 사운드를 좀 더 투명하면서도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가다듬어 시적인 정서를 자아내면서 청중의 공감을 얻었다.

브람스 교향곡 중 예외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끝나는 4악장 종결부에서 서울시향의 관악기 주자들은 깨끗하고 완벽한 화음으로 이 교향곡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교향곡의 조용한 결말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앙코르곡으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선택해 공연장을 드라마틱하고 열광적인 분위기로 이끌었다.

서울시향은 브람스의 교향곡들 가운데 연주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교향곡 3번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이제 '서울시향의 브람스'가 국내 음악계 최고의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점차 높아지는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지속적인 '품질관리'가 서울시향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사진설명=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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