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공동주택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주거의 주체이다. 그런 연유로 아파트는 서민에게 재화이고 큰 평수는 신분이며 없는 자에겐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년 시절엔 시골 초가에 살았고 결혼 후 분가해선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 후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30 여 년이 되었다. 아파트 생활은 편리하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정이 없어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담벼락이 없어지고 골목길이 없어졌다. 골목길은 제기차기와 딱지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언제나 시끌벅적 했다. 연탄재가 쌓여 있고 엿장수 두부장수들의 외침소리가 골목 멀리 울려 퍼졌었다. 언제부터인가 연탄 구들에서 기름보일러로, 다시 지역난방으로 바뀌면서 온돌방에 앉아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던 정도 사라졌다. 아빠는 집안에서 속옷만 입고 스스럼없이 다니니 아이들이 아빠를 별반 어려워하지 앉는다. 밥상이 없어지고 식사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보니 밥상머리 교육도 실종됐다. 온돌방에서는 이불을 펼 때도 부모님 순으로 했고 따뜻한 아랫목에는 부모님을 윗목에는 자녀들이 앉았다. 그렇게 하여 생활 속에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었다. 허나 지금은 노인분들이 아파트 생활을 달가워하지 않으니 자연 부모공경의 기회를 잃게 됐다.

뿐만 아니라 침대 생활을 하니 이불을 개는 일도 거의 없다. 어렸을 때 일어나면서 이불을 개고 펴던 일은 지나고 보니 공동생활의 훌륭한 교육이었다. 공간은 단순해졌는데 욕심은 더 많아지고 편리해졌으나 생활은 더 여유가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 열린 공간에서 마음대로 방목된 듯 거리낌없이 뛰어놀았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육 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아파트의 동선은 수평의 위계에서 내부의 거주자들이 동등한 개체라는 민주적 인식에 기초한다. 그것은 예전처럼 부모를 높은 위치에 만들 수 없으며 자녀들은 낮은 층위에 놓을 수 없다. 평면의 구성은 면적만으로 서열화 될 뿐이니 우리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수직적 공간 구조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파트 주거는 획일화 되어 사방, 팔방이 똑같은 주거 패턴이다. 그러니 우리는 물론 아이들도 동일해진다.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같은 삶으로 나아간다. 다만 다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파트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우려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기우일까? 요즈음에는 아파트에 각자의 방이 있어 퇴근하거나 학교에서 돌아 와서도 자기 방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특히 아파트가 크고 좋을수록 미로처럼 되어 있어 거실에 함께 모이지 않으면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로 모든 것을 해결하니 컴퓨터와 하루 종일 씨름하고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한다.

잃어버린 것들은 늘 아쉽고 그립다. 반복과 균형의 공간이 우리의 부정형과 무정형의 공간을 대치하였다.

빈틈없는 것을 얻은 대신 여유를 상실했다. 내부로 닫히면서 외부로 열린 것들 또한 잃었다. 검박한 품격을 찾기 힘들고 아파트엔 경박한 것들이 많아졌다. 오래된 것들이 홀대 받으며 새것들이 환영 받는다. 소통이 적어지고 단절이 많아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이웃이 얼굴을 돌리거나 마지못해 인사하는 것 또한 생경스런 문화가 아닌가.

오늘도 변화의 중심인 아파트를 향해 퇴근을 한다. 지금 눈 앞에서 몇 천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하던 정주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는 그 모든 변화를 한꺼번에 진행시킨다. 급격한 변화와 파괴의 정점에서 아파트를 짓고 생활하는 만큼 우리 안의 정체성이 계속 사라져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없어지는 것과 새로 생기는 것 사이에서 심히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오랜 세월이 만든 것은 깊이가 있고 속성으로 만든 것들은 대부분 조악하고 경박하다. 이것들이 시간의 때를 입어야 나름의 깊이가 있을 것이다. 자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시와 주택, 주거와 정주성이 모두 바뀌고 있다.

집이 꼭 편해야 하는가? 생활이 꼭 편리해야 하느냐? 편안한 것과 편리한 것을 구분 짓는 것은 아마도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에서 분실과 파괴라는 아이콘을 추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들에 대한 낡은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래된 것들을 무조건 백안시 하는 아파트 문화의 요즈음 세태에 대한 새로움의 반감은 아닐까?

나의 생각과 현실 그것은 아파트의 이웃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우리가 살았던 60년대, 70년대가 그리워진다. 흘러가는 세월은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만 우리 삶을 주도하는 주거 공간은 우리가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가고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주거 공간이 재화와 투기수단으로 되어버린 현재에서 다시 주거가 사람의 혼을 담고 삶의 철학을 담는 공간으로자리매김 하기를 바람 해 본다.

▲ 정관영 공학박사·충청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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