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욕을 불러일으키고, 눈앞의 즉각적인 만족을 뛰어 넘는 저 너머의 더 큰 가치를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소년에게는 이러한 꿈의 기능이 살아 있어야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는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꿈은 장래희망일 뿐이다. 재능의 조기 발견과 조기 교육이 강조되는 시대 풍조는, 나중에 커서, 하고 싶은 직업을 답하지 못하는 소년은 꿈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기 십상이요, 아주 예외적인(평균치의 개념으로 보면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의 조기발견자들을 우상화한다. 정상적인 발달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소년들에게 일부 조기성공자들의 우상화, 대중화는 압박으로 다가간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인데, 그렇기를 바라는 부모와 사회는 소년을 압박한다.

소년기의 꿈은 자신이 해나갈 직업을 빨리 정하고 노력해서 남들보다 결국 성공하겠다는 경쟁과 성공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소년의 존재자체를 드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즉 아직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내 속에 분명이 있는, 땅속에 묻혀있는 원석 같은 나만의 것을 발견해 내어 내 존재의 의의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생각, 내 열정을 쏟아 부어 결국 나만이 해 낼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가슴을 부풀게 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타인과의 경쟁의식속에 자신을 성공시키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살려 내는 것 자체가 발전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 장래희망을 가진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발 먼저 직업을 정해서 결국 나중에 남들보다 뛰어 나겠다는, 즉 타인을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세상을 경쟁구도 속에서 이해하게 되면 아이의 마음이 각박해지고 메마르게 되며, 높은 긴장 속에 살아가게 되어 여러 가지 심리적/현실적 장애를 겪게 된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10대 후반에 세계적인 사람으로 성공하는 경우를 보면, 한가지 운동종목 또는 하나의 악기연주나 미술 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포츠와 예술처럼 넓은 경험이 없어도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 깊이 있게 매진할 수 있는 직업에 맞는 사람만이 자신의 꿈을 펼칠 분야를 조기에 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외적인 경우로 평가되어야하며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의 교육적 모델로 삼지 말아야 한다.

"공부에 소질이 있네, 없네"라는 말을 하는 부모를 보면, 마치 '음악에, 운동에, 미술에 소질이 있네 없네'라는 말을 하듯 공부도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공부에 소질을 논하다니, 공부에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학교 등수나 잘 받아 기껏해야 남들보다 사회에서 돈을 조금 더 버는 직업, 남들에게 싫은 소리 덜 듣는 직장,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자리에 가기 위한 것이 공부요 교육인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공부는, 그 사람이 가진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는 개성적인 재능(같은 직업을 가져도 일의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다를 수 있기에 개성적인)이 말 그대로 개성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교육을 받고 개성적으로 직업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은 타인과 비교 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그 사람의 것을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남들과 같은 내용의 것에는 감탄을 하지 못한다. 뭔가 지금껏 자신이 보아 온 것과는 다른 것이 있는 그 개별적인 것이 존재할 때 작은 것 하나를 보더라도 감탄을 하게 되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충만하게 만들 진정한 공부재능을 가지고 있다. 등수가 뛰어 나지 않은 아이들이 마치 공부 재능이 없는 아이인 것으로 부모의 편협한 시야에 의해 매도되어, 아이들의 창조성과 열정이 사장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 한병진 마음편한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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