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훌쩍 멀어졌다. 창틈으로 들어와 차안을 휘감는 마른 바람이 소슬하다. 출근길, 무심히 핸들 잡은 손을 바라보다 세월을 보았다. 다홍색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이 세월에 반쯤 밀려나 있었다.

어린 날, 햇볕 따가운 여름에 우물가에서 봉숭아 꽃잎을 한줌 따다가 뒤꼍 장독대 돌멩이 위에서 꽃잎을 이겼다. 백반을 넣어 빻은 꽃잎을 손톱위에 얹고 아주까리 잎으로 고이 싼 다음 이불 꿰매는 굵은 무명실로 칭칭 동여매었다. 갈퀴처럼 벌린 손가락이 불편해서 한 끼쯤 걸러도 배고픈 줄 모르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손톱이 군시러운 채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손가락 끝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살 속에 박힌 붉은 흔적이 며칠 새 사라지고 나면 곱디고운 손톱이 예뻐서 보고 또 보고 했던 여름 한철의 사치가 봉숭아꽃 물들이기였다.

새댁 때 손톱에 매니큐어 칠했다가 시어머님에게 크게 야단을 맞은 이후로는 손톱에 무얼 발라본적도 없다. 손 관리도 하지 않아 펑퍼짐하고 넓적한 손톱을 무심히 바라보다 지난여름 봉숭아꽃 물을 들였다. 요즘은 문구점에서 사온 봉숭아 가루로 손톱에 물을 들인단다. 꽃가루를 물에 살짝 개어서 손톱에 얹어 놓았다가 삼십 분정도 지난 다음에 씻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편한 방법을 알게 되어 옛 생각에 젖었다. 네 살배기 손녀딸의 물같이 여린 손톱에도 얹어주고 며느리 손톱에도 물을 들여 주었다. 며느리에게 열손가락을 내밀며 킥킥거렸던 그날로 부터 내 손톱 반만큼의 세월이 지났나보다. 시간이 길이로 가늠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신기했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이 붉을까?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 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손톱을 자르지 않고 버텼던 아잇적 추억이 떠오른다. 만나볼 첫사랑도 없으면서 그때까지 손톱이 붉었으면 하는 바람은 무엇일까?

내가 열다섯 살 때 서른다섯 살이었던 우리엄마. 내게 곱게 물을 들여 주고 다음 날 내 앞에 손을 내밀던 엄마에게 나는 대충대충 봉숭아꽃잎을 얹어 주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노인 인 듯 기억 된다. 예쁘고 고운 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몫이었고 늘 뒤쪽에서 소리 없던 엄마의 젊은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노인이 된 작은 어머니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냄새로 기억 되면서 왜 우리 엄마는 흑백사진으로 떠올려지는지 모를 일이다. 언제나 한복을 입고 여름에도 팔뚝을 드러내지 않고 늘 버선을 신으셨던 엄마. 그때 엄마의 모습은 내게는 까마득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평생 그 나이쯤 되지 못할 것도 같은 지루한 거리였다. 그림자처럼 무심하던 엄마에게도 손톱에 꽃물들이고 싶은 소녀 같은 감수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할 수가 없었다.그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큰아이가 서른 중반이 되었다. 내 나이 여남은 살 때에 우리 엄마를 바라보던 그 눈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같은 나이 다른 느낌이다. 언제쯤 서른 중반의 어른이 되어볼까 싶었던 내가 이제는 서른 중반의 자식을 바라보며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주 가끔씩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의 거리에 계신 엄마에게 무심했음에 문득 가슴이 저리다. 어렸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마와 나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제 곧 내게 닥칠 나이를 엄마의 얼굴에서 읽게 된다. 봉숭아꽃 한 봉지 사가지고 친정에 가서 희희낙락 손톱에 꽃물들이고 싶다. 노인이 되어서야 총천연색으로 연상되는 우리엄마 손톱에 붉은 꽃잎 얹어주고 싶다. 세월은 가거나 말거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유유자적하고 싶다.

▲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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