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자신의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에 이르기를 천륜(天倫)에 야박한 자와는 상종도 하지 말라 일렀었다. 부모 형제를 가볍게 버리는 자는 아무리 충성스럽게 온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섬기더라도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 하였다. 이런 자는 은혜를 배반하고 의(義)를 저버려 아침엔 따뜻이 대해주다가도 저녁엔 싸늘하게 돌변한다고 하였다.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가정생활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부모는 물론 형제를 가볍게 버리는 자는 불효자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이로보아 효는 백가지 행동의 근본임을 굳이 강조 안 해도 다산 정약용의 편지글에서 그 맥(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엔 걸핏하면 재산 때문에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길 예사이고 부모를 해하길 주저치 않고 있다. 천륜을 저버린 인면수심(人面獸心)에 만약 지하에 있는 정약용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벌떡 일어날 정도이다.

어제 산을 오를 때 일이다. 앞서 가던 서른 초반 쯤 돼 보이는 여인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듣곤 매우 심사가 껄끄러웠다. 아마도 시부모 공경 이야기인가본데 그 도가 지나쳐 곁에서 듣노라니 괜스레 민망스러웠다. 이야기인즉 어느 한 여인은 자신에게 시부모가 다니러 와 벌써 여러 날 째 머물고 있는 가보다. 시부모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게 불편한 나머지 밤에 보일러도 틀어주지 않아 냉방에서 노부부를 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푸대접을 하면 견디기 어려워서라도 얼른 시골집으로 돌아갈 것 아니냐는 여인의 말이었다. 그러자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 말에 맞장구라도 치듯 옆에 또 다른 여인이 입을 열었다. 자신도 얼마 전 시어머니가 찾아왔었는데 며칠 머무는 게 못마땅해 걸핏하면 아침을 빵으로 해결했더니 못 견뎌 시골로 내려가더란다.

시부모가 누구인가. 모르긴 몰라도 여인들 자신의 자식들 뿌리 아닌가. 시부모가 낳은 자식이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 아닌가. 그게 아니어도 언젠가 머잖아 자신들도 시부모의 그 위치에 이르지 않는가.

얼마 전 높은 벼슬에 계신 분(?)이 노인 공경 문제는 국가의 책임이 아닌 개인적 책임이라는 노인 홀대 발언을 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안 그래도 고령화 시대에 노인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 되는 이즈막 정작 노인들을 공경해야 할 자손들이 이런 삐뚤어진 사고를 지니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부모요, 시부모도 엄연히 부모 아닌가. 남의 가문에 시집와 남편 사랑 받으며 자식 낳고 산다면 당연 남편의 부모도 지극정성으로 공경함이 도리 아닌가.

정약용의 편지 내용대로 부모 형제를 가볍게 버리는 자는 결코 가까이 할 자가 못된다. 언젠가 우정도 이웃 간의 정도 쉽사리 저버리는 일은 정해진 이치 아닐까 싶다.

/김혜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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