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권희 교수는 지난 11월 19일 청주대학교에서 개최한 '서지학회' 학술발표대회장에서도 고려 금속활자 몇 점을 공개했다. 11월 5일 청주인쇄박물관에서 개최한 '한국서지학회'학술발표대회장에서도 그는 증도가자가 진짜라는 주장을 폈다. 필자는 그날 남교수에게 몇 가지를 해명을 요구했다. 필자는 "반각본은 글자가 같아야한다. 28명의 각수가 새겨 글자가다르더라도 그중 '증도가자'와같은 글자 1자는 있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번각본은 한글자라도 같으면 번각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자가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으니, 공식 토론은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자는 식으로 종료시키는 바람에 해명을 듣지 못했다. 필자는 남교수가 번각본『증도갱글자가 '증도가자'와 같다는 주장을 부정해왔다. 이에 필자는 남권희교수께 몇 가지 해명 해 줄 것을 요청한다. 11월 5일 구두로 요청했던 내용을 상세히 정리했다. 문서상으로 제기하는 네 번 째 반박성 내용이다.

첫째, 2010년 9월 2일 목요일 언론에 "금속활자 50여 점을 4년여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명(明)' '어(於)' '평(平)', 선(善), 보(菩) 등 12점이『남명천화상증도가(이하 증도가)』의 서체 크기 등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되었다. 나머지 활자는 어느 시대 활자인가? 둘째, '증도가자'와 번각본 '증도가자'의 '명(明)'자 '선(善)'자의 서체가 육안으로 보거나 서로 겹쳐보아도 다른 것이 분명한데, 서체가 같아 보이는가? 셋째,남교수는 '한국서지학회장'이라는 회장 직인이나 '남권희'라는 사인을 번각해서 복각했을 글자 모양이,『증도갱글자와 '증도가자'라고 주장하는 글자가 서로 다르듯이 서로 다른가? 넷째. 남교수가 작성한 원고를 인쇄소에서 임의로 변경하여 편집하는가?남교수가 박사학위논문을 지도했을 때, 제자들중에 남교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제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당시 최고의 권력자 최이가 주도한 번각본인데 글자를 새기는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다르게 새길 수 있다고 보는가? '명(明)'자와 '선(善)'자 만 보더라도 서로 다르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다섯 째, '명(明)'자에는 붉은 흙이 묻은 듯한데, 나머지 활자는 흙도 거의 묻지 않고 먹물이 진하게 묻어있어 거무스름하다. 같은 장소에서 출토됐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섯 째, 붓으로 글씨를 쓸 때 직각의 획 보다는 곡선의 획을 쓰기가 용이하다. 글자를 새길 때는 곡선보다 각이 지게 새기는 편이 용이하다. '증도가자'는 획이 직각이고 번각본『증도갱는 획이 곡선이다. 획의 굵기가 2mm도 안되는데,쉽게 새길 수 있는 각이 진 획을 각수(刻手)가 힘들게 곡선으로 새기겠는가? 일곱 째, 2010년 11월 5일 고인쇄박물관에서 "번각본은 한글자라도 같으면 번각본이 아니다"라고 했다. 남교수는 번각본『증도갱에서 '증도가자'로 찍었다는 글자 28자를 제시했다. 28명의 각수가 새겨 글자가다르더라도 28자 중 제시한 '증도가자'와 1자는 같은 글자가 있어야하지 않는가? 필자가 보기엔 하나도 없다. 아홉 째, '명(明)' '선(善)' '어(於)'등 번각본『증도갱에서 '증도가'로 찍었다고 추려낸 205자 중 '증도가자'와 같은 글자가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하나도 없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

/이상주 중원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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