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치게 활발하고 씩씩해 보인다. 어설픈 삼사십 대에는 맷집도 좋아 보이는지 툭하면 직장 상사에게 야단도 잘 맞았다. 상사는 실컷 야단쳐 놓고 회식자리에서 술 한 잔 주면서 이해 할 만하니까 본보기로 좀 세게 다루었으니 미안하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퉁 친다. 지나치다는 것은 어떤 일이나 현상을 문제 삼거나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냥 넘기다 는 뜻을 지닌다. 내 본심은 여리기 짝이 없고 속내도 좁고 사소한 것에도 온 정신을 빼앗기는 밴댕이 속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대범하고 쿨 한척 행동하게 되고 결국은 가끔씩 동네북이 되고는 했다. 게다가 일도 서투르니 얼마나 만만한 상대인가. 그렇게 싸잡아 당 한 날은 마음을 삭이느라 피곤해서 지칠 때까지 일을 하고 밤이 이슥해서야 퇴근을 한다.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딴 생각 들어온다는 말에 일에만 몰두한다가 어두운 현관에 들어와 구두끈을 풀려고 엎드리는 순간, 손보다 더 먼저 눈물이 구두코 위에 떨어진다. 낮 동안에 지나쳤던 내 마음을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러운 눈물로 위로해준다. 그렇게 속이 다 시원하게 펑펑 운 날은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눈을 보고도 웃음이 난다.

농사지을 때 낮 시간은 내게 얼마나 큰 짐이었던가. 허리가 부러질 듯 한 노동의 고통은 질긴 낮 시간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의 비둘기 빛 하늘은 내게 평화를 의미한다. 그 기억은 친정어머니의 품 속 같은, 어둠이 덮치기 전의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윽고 밤이 되어서 길고 나른하게 방바닥에 몸을 뉘일 때의 행복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는 밤이 주는 특권이었다. 심지어 남편에게 조차도. 그 밤은 아픈 팔다리에서 지르는 아우성을 달래주고 감싸 안아 준다. 밤에는 낮 동안 수고한 내 몸이 온전히 위로 받는 유일한 시간이다.

삼십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가 더러 있다. 그런 날 토라져서 쌀쌀하게 입을 다물고 눈길도 주지 않는 내게, 이윽고 밤이 되어 tv도 다 끝나갈 때쯤이면 남편의 표정이 살가워진다. 마치 아침에 나와 다툰 것을 후회하고 있는 듯도 하다. 샤워 끝내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이 "일찍 자야지. 피곤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 그 눈길, 밤이 아니면 연출하지 못한다. 그렇게 밤에는 화해도 하게 된다.

요즘 논문 초안 잡느라 때로 사무실서 밤샘을 할 때가 있다. 책상에 엎드려 두어 시간 눈을 붙이는 것만으로 밤을 보낸 날은 그래도 무언가 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마중물처럼 내 밤 시간을 사용했다. 졸리고 피곤한 몸을 다그쳐 머리를 짜 냈다. 그러다가 결국은 심한 감기 몸살에 꼬박 이틀을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도 뼈마디가 자지러지게 아프다. 가로등이 환한 길가의 깻잎은 들깨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이 왜 자꾸 걸리는지 모를 일이다.

하루가 낮과 밤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오묘한 일인가. 밤은 낮보다 스스로에게 관대하며, 자신만의 생각으로 깊어지고 모든 일을 넓게 품을 줄도 안다. 낮 동안 지나쳤던 내 마음을 어루는 밤, 그래서 나는 치유의 시간, 밤을 사랑한다. 밤은 숯처럼 내 몸의 물을 걸러 새벽을 맞이하게 한다. 다시 맑아진 물로 나는 하루를 살아낸다.

/유인순 천안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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