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펼치기가 두렵다. 요즘 들어 더욱 그렇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조성된 긴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우리 영토에 대한 북한의 공격은 천인공노할 만행임에 틀림없다. 정전 협정 이후 수도 없는 도발과 술책으로 우리를 위협했지만 이와 같은 직접적인 공격은 처음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포연이 자욱한 연평도, 민가를 휩싼 불길,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 서둘러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 그야말로 전쟁의 아수라장이 아니고 무엇이랴.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 이러한 사태를 막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세상사가 내 맘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일이 터진 후의 지혜로운 대응이 방비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사태 발생 후 보름이 훌쩍 지났지만 갑론을박, 정제되지 않은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을 필두로 하여 정책 당국자들이 내뱉는 강경책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 이게 내가 신문을 펼치기 두려운 두 번째 이유이다.

왜 이런 일이 터졌을까. 당하지 않은 국민들이야 강 건너 불일 수도 있지만 내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어떠할까.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연평도 주민들의 절규를 보라. 대대로 살아왔을 삶의 터전이지만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저들의 망연자실에서 나는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 수호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이며 통수권자가 지켜준다는 생명과 재산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슬프고 참담한 일, 민족의 질곡이 왜 이리도 험난한 것인지.

많은 견해가 쏟아진다. 장삼이사들의 해법이 격론으로 이어지면서 친구 간에 엉뚱한 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그 와중에 미국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고, 일본은 어떻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계산기가 요란하게 돌아간다. 각 국의 이해에 따라 우리 강토가 또 다시 이들의 각축장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구한말의 뼈아픈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두 번 다시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는 일이다.

냉정을 찾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위권 차원에서의 응징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상황이 종료된 상태에서 목소리만 높인들 버스 지나가고 나서 손들기이다. 흥분할 때가 아니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재발 방지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우리의 태세를 정비하는 일이 먼저이다.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레토릭은 부질없는 화를 부를 뿐이다. 그들의 공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명분과 당위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 이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분 있는 약자가 명분 없는 강자를 이겼다'는 베트남전의 교훈, 가까운 역사는 그것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김홍성 (청주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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