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대중매체를 통하여 <김씨 표류기>와 <로빈슨 크루소>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물론 이 영화들은 다니엘 디포가 1719년 60세 때 발표한 장편소설「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한 것들인데, 영화들과 원작사이에는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전해줄 수 있는 공통적인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수많은 아류작들을 탄생시키는 것 같다.

급변하는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바쁘게 기계처럼 돌아가는 우리네 삶들을 들여다보면 펌아함과 이기적인 생각들로 만연해 있다. 주변의 동정심을 구하는 일에는 전여 관심이 없고 자식들의 인성교육에는 더욱더 편파적이며 정신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인 것 만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다. 마치 카리브해의 어느 외딴섬에 난파되어 탈출만을 그리워했던 로빈슨 크루소처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나 마음 깊은 한편에 각자의 섬들을 가지고 있다. 그 섬 속에서 우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뇌와 번민을 반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반면에, 때로는 고립과 고독 속에서 구원의 필요성을 갈구하고 현 사회에 대한 인간 본성의 잔혹성과 어둠을 드러낼 수 있는 물질 문명에 편승하여 욕되고 허구적인 무인도를 창조할 수 있다.

작품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은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섬'속에서, 로빈슨과 섬과의 관계처럼, 우리들 또한 내면의 섬들을 깊이 생각해 본 필요가 있다. '그 섬의 변화의 대상은 누구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섬인가?'를 말이다. 잃어버린 사회적 영역의 유물들 중에서 우리의 마음을 혼란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 섬에 두텁게 외벽을 쌓아 타인과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고집하는 아집일 것이다.

하지만 굳게 닫아버린 섬의 문을 활짝 개방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이방인과 그 섬의 영역을 같이한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본모습과 잃어버린 사회를 발견함과 동시에 타인과의 낯설음도 친숙함으로 변화 될 것이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섬은 '절망의 섬'이 될 수 있으며 '희망의 섬'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섬에 표류한 스코틀랜드 출신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의 모험담을 근거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로 탄생한 작품 속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섬은 '탄식의 섬' 혹은 '절망의섬'으로 그려져 있을 수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면이 크다. 로빈슨 신화의 진정한 기원은 우리의 현실 사건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고독과 고집에 대한 꿈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마음속의 섬, 무인도에서 난파선의 붕괴를 절망과 상실이 근원이 아닌 희망의 불씨로 생각한다면 외부세계 즉, 우리주변의 상황들에 대한 단절이 없을 것이며,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할 수도 있고 섬과의 관계에서도 스스로 변화하는 길을 찾아 '절망의 섬' 이 '희망의 섬'으로 바뀔 것이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섬 속에 갇혀버린 로빈슨 크루소처럼 문명세계의 잔해가 가득 존재하고 과거의 기억에만 사로잡혀 있음으로 해서 근본적인 모순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물질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본연의 인간성과 사회성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 해서, 한해도 마무리 되는 이때에 우리 모두의 숨겨진 잘못한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꿈 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환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창조인 homofaber에 대한 짙은 향수, 인간이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낸다는 원리에 따라서…….

/박기태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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