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는 나는 요즘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을 많이 듣는다. 차에서도 듣고, 새벽기도가 끝난 시간이나, 한밤중에도 듣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제4악장 그 중에서도 "환희의 송가"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이 음악이 많이 연주되고, 클래식 방송에서도 자주 들려준다.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환희의 송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들의 회오과 희망을 담은 곡이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과 같은 빛남. 낙원의 처녀여, 우리들은 불꽃같이 취해서 그대의 하늘같은 지성소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대의 매력은 이 세상의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은 것을 다시 결속시켜 그대의 조용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도다 --"

이제 이 해도 몇 일 남지 않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이를 한 둘 먹어갈수록 그 속도는 빨라진다. 이 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새해를 앞두고 있다. 과연 무엇을 하며 한 해를 보내 왔던가. 정말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던가. 나는 기독교인이다. 하나님께서는내법률을 도구로 다른 이들을 섬기라는 소명을 주셨다. 한 해를 돌아보아 과연 얼마나 잘 섬겼는지, 나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섬김을 빙자해서 결국 내 배만 불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결국,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잘 모시겠습니다." 세 마디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한 해가 내 힘으로 살아진 것이 아니다. 주위 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은혜다. 법률서비스업무를 담당하는 중소로펌 대표인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일거리를 확보하고 잘 해결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내 힘만으로 되겠는가. 혼자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때도 그랬지만, 주위 분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의 소개를 받고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전에 잘 대접하지 못한 의뢰인의 소개를 받고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사무실을 찾아오는 분들의 경우를 보면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매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일이 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내 동료변호사들과 직원들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는 분들이 도와주어야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나로 하여금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런데 나로 인해 가슴 아파했던 이들도 없지 않았다. 사소한 말실수라든가, 그가 기대했던 대로 해주지 못한 데서 받은 실망 같은 것. 특히 법률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 년이면 몇 번씩 있다.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없을 때, 나에게 일을 맡겼던 분의 실망과 좌절감. 나아가 그렇지는 않아도 기대했던 만큼의 서비스가 없을 때 느끼는 실망감. 참 어려운 일이다. 올해도 그런 분들이 몇 분 있었다. 내 나름으로든 최선을 다해 한 것 같은데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 또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실망해서 떠난 경우, 심지어는 개인적으로 굴욕감을 느낄 정도의 언사를 사용하며 실망을 표하는 경우 등. 돌이켜보면 그 모는 것이 나의 부족 때문이다. 실력부족, 정성부족 등등. 그래서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섬기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을 통해 타인을 섬긴다. 청년시절에는 그 섬김의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애쓰다가, 자기 직업을 확보하면 바로 그 직업을 통해 다른 이들을 섬긴다. 거창한 다른 구호가 무엇 필요하겠는가. 내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소명이다. 환희의 송가.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겸손해진다. 그리고 결심한다. 정말 헌신의 삶, 섬김의 삶을 살자고.새해에는 단 한 명이라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섬기겠노라고. 그래서 "더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한해를 마무리한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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