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동학혁명사의 중심

동학혁명사에 대한 역사 연구나 평가는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정권 영향 아래에서 오랜 세월동안 제한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가 민중의 투쟁사적 시각으로 파악되는 연구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진행된 동학혁명
사 연구는 관 기록에 의존하여 일반적이고 관념적인 역사 연구에 머물고 말았다. 즉, 동학혁명사가 전라도 지역 전봉준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제한된 범주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는 결국 충청도의 동학혁명사가 우리 가까이 살아 있는
역사로 이해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 소백산맥 중심 충남 경기지방 교두보역

충청도는 단양 괴산 보은 청산 영동 황간 등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최시형이가장 먼저 잠행 포덕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와 경기 호남 지방으로 동학을 포교 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충청도 동학은 뚜렷한 경계도 없이 서쪽으로 태안, 남쪽으로 서천까지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갔던 것이다. 이 같은 민중의 역량은 충청도가 동학포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동학 지도부에 의해 공주집회 삼례집회 (1892), 광화문복합상소 보은취회 (1893)의 활발한 동학 활동이 전개된다.

이 역량은 동학혁명 시기에 이르러 경기 강원 충청 경상 지역의 북접 동학군이 보은 장내리 대도소에 집결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2세 교주 최시형은 손병희를 북접 동학혁명군의 통령으로 임명하여 논산으로 이동하여 호남의 전봉준 군과 합진하여 대 연합군을 형성하여 공주 성 함락에 나서게 된다. 남북접 대 연합군 형성은 단군 이래 가장 대규모의 민중 결집이었다.

그러나 동학연합군은 공주성 공략을 위해 우금치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지만 일본의 신식 무기 앞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북접의 동학혁명군은 전라도 임실 새목터까지 피신했다가 최시형을 만나 소백산맥을 따라 이동을 시작한다. 18차례에 거쳐 싸우게 된 북접 동학혁명군은 북실에서 집단학살 당하고 만다.

즉, 역사 현장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도 지역 역사 연구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 비해 기념사업도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 전라지방 동학혁명 기념사업 활발

▲장흥지방 동학기념사업 기획안. 그동안 지역 기념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해 온 필자로서는 참으로 부러웠다.
필자는 지난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동학민족통일회(상임의장 박남수) 주최 제1회 동학순례 행사 안내를 맡아 전라도 남해 지방의 동학혁명 사적지를 안내했다.

일정은 영암 진도 강진 병영 장흥남원을 거쳐 장수 무주 영동 황간 용산을 두루 거쳐서 청산 문바위골 보은 장내리와 북실을 돌아보는 긴 여정이었다.

여기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동학혁명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었다. 각종 기념사업을 벌이거나 기념 사업이 진행 중인 지역이 많았다.

예를 들면, 진도 지방 동학혁명 기념사업회에서는 해마다 <진도 평화제>를 통해 1000여 년 전부터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는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 동학혁명사 연구를 위한 학술대회를 해마다 열거나 일본에서 소수민족인 아이누 족을 초청하여 행사를 치러 살아 있는 현재의 역사로 치르고 있었다.

장흥지역의 동학기념 사업회(회장 김동철)의 경우 군과 도의회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활발하게 기념 사업이 이미 실행되었거나 새로이 계획되고 있었다.

도에서는 장흥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부지 수용령과 더불어 더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었다.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회장 한병욱)에서는 이미 이 지방의 동학혁명사 연구와 기념사업이 이미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아치 전투> 기념사업을 위해 예산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현재도 진행중인 보은 동학공원. 완성도 전에 온갖 흉물스러운 구조물로 얼룩져 있다.
이에 비하면 충청도 동학기념사업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답보 상태거나 추상적이다.

그동안 충청 지역에 동학혁명 기념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해온 필자로서는 참으로 부러웠다.

현재 필자는 문화관광부와 문화재청, 충청북도와 보은군에 보은 장내리와 북실에 대한 사적지 지정 을 촉구 했지만 여러 달이 지나도록 역사적 근거가 없다 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현재 재신청을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

도리어 장내리는 이미 최근 몇 해 동안 돌이킬 수 없이 역사의 현장이 훼손되었고, 그나마 종곡리 일대에 진행된 <동학공원사업> 역시 엉뚱한 사업으로 전락되어 충청북도 시민연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 놓은 상태다.

# 지역 역사 발굴 연구 나서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 땅의 민중은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내몰려 맨몸으로 투쟁하다가 산화했다.

오늘날 그 민중은 그동안 한낱 처절한 모습으로만 규명되었을 뿐, 후손으로써 그들의 정신이나 그들의 행적에서 미래적 전망을 찾지 못했다. 미래적 전망이 없는 역사는 한낱 공허한 관념일 뿐이다.

이를 위해 풀뿌리 지역 역사를 찾아내고, 지방자치 주민들과의 역사 공유 과정을 통해 동학 혁명사를 오늘의 의미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기념사업으로 탑을 세우고 기념관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학계는 지역 역사를 발굴 연구하고, 지방자치 단체는 교육이나 체험 학습을 통해 저변을 확대해 나가면서 점차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먼 옛날 전라도 고부 땅 전봉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둘러보면 우리 증조부 고조부가 동학군이고 전라도가 아닌 저 뒷동산에서 싸웠다는 역사적 사실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념사업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기념사업은 처음부터 온전히 주민들의 것이라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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