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속 구제역방역 혼신

머리가 나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고 하지만 속수무책 정부를 잘못 만난 공무원들이 구제역때문에 개고생들이다. 시쳇말로 개념이 있는 정부였다면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구제역이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이렇게까지 놔두지 않았을테지만 '제풀에 죽겠지' 하다 '이게 아니다' 싶어 뒤늦게 준국가비상사태니 뭐니 하며 난리를 치고있다. 그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구제역은 기세를 꺾지 않고 창궐하고 있다. 이런데도 정부와 박자를 맞추듯 국회 등 정치권은 근본 예방책이 담긴 가축전엽병예방법 개정안을 몇 달째 방치하는 직무유기를 하면서 여야간 네탓공방만 하고 있다. 축산농들의 한숨과 국민들의 주요 먹거리에에 대한 불안,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물가관리 허점 등 초긴급민생 현안은 제쳐두고 감사원장 내정자 퇴출에 올인했다. 여기에다 어느 야당중진은 정부가 미국쇠고기 수입을 확대하려고 구제역을 방치한다는한마디를 던져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는 방역 공조보다는 우리 지역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지역이기주의로 확산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듯 엇박자와 무대책이 춤추고 있는 사이 꽁꽁 얼어붙은 길거리의 방역초소와 살처분 현장에는 투입된 공무원들의노고와 분노, 절망, 안타까움이 넘쳐나고 있다.

일선 시군의 공무원들이 3교대로 한달 여 가까이 방역초소 운용과 백신주사. 살처분. 매몰 등에 애를 쓰는 과정이 노고라면, 정부조직의 일원이기도 한 자신들의 상층부가 취하고 있는 늑장조치나 뒷북 방역 등에 대한 못마땅의 강도는 분노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독극물을 주사해 살처분 하거나 아니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자기손으로 흙구덩이로 몰아넣는 어머어마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와 축산농들의 가슴저미는 모습을 봐야하는 절망과 안타까움은 일생의 충격으로 남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를 겪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불행한 예견이지만 구제역 종결이 바로 될 것 같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지난 2000년과 2010년에도 구제역파동을 겪은 바 있는 정부로서는 이번 사태를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는지 모르지만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재앙인 수준이다. 더구나 인재성이라는데서 우리는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한심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정밀한 분석과 신속한 초기대응을 했더라면 자식같은 가축을 눈앞에서 숨통을 끊어 보내야하는 축산농들의 참담함이나 얼어붙은 날씨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방역현장의 피로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주 부터는 지자체 인력으로 한계에 도달하자 도청 직원들 까지 현장 지원을 나가고 있다. 남녀, 간부급 할 것 없이 3교대로 시군 공무원의 수고로움을 덜고 있는데 공무원사회의 여성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가급적 여성공무원들은 낮근무에 배치하고 심야는 남자직원들이 맡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인원의 불균형으로 인해 이마저 여의치 않다고 한다.

무사안일, 철밥통의 대명사로 각인된 공무원들에 대한 인식이 적어도 이번 구제역사태 수습 현장에서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주말과 휴일은 잊은지 오래고 맞벌이가 많은 특성상 아내, 남편 얼굴 보기도 예전만 못하다. 군부대 ,경찰인력이 지원한다고 하지만 찔금찔끔이어서 별반 도움이 안된다. 몸은 파김치, 정신은 몽롱하지만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봉사하는 공직자의 근본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그 사용자인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일인지 되돌아 보게된다.

그런 가운데 우리 지역은 아니지만 구제역방역 현장의 과로로 희생을 한 공무원도 생기는 등 구제역이 가축만 잡는게 아니라 사람도 잡고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 악조건속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공무원들의 혹한속 '개고생'은 구제역 청정국가 지위를 회복하는 그날 보람으로 남을 것이다.

/이정 본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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