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재인 성사재천

중국 원나라 때의 소설가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를 보면, 촉한(220~263)의 사령관 제갈량(181~234)은 오나라의 손권(182~252)과 연합하여 위나라의 조조(155~220) 대군을 적벽대전에서 불 공격으로 대파했다. 제갈량은 촉한의 첫 황제 유비가 죽은 후 오나라와 다시 제휴, 위나라 장군 사마의(179~251)의 군대를 '호로곡'으로 유인, 화공으로 몰살시키려 했으나 공격 순간 소나기가 내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제갈량은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라고 탄식했다.「계략(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어서 강제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갈량의 이같은 탄식은 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참패한 프랑스군에서도 터져 나왔다. 태평양전쟁 때 물러났다가 1946년 베트남에 다시 진주한 프랑스군은 베트남 민족전선을 이끌던 호찌민군과 디엔비엔푸에서 운명의 결전을 벌였다. 프랑스의 베트남 주둔 사령관 '나바르' 장군은 1953년 말까지 디엔비엔푸에 1만1천여 명에 달하는 공정부대를 투입, 베트남군을 일거에 소탕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일찍 시작된 몬순의 집중호우로 진지가 물에 잠기고 공수보급품의 단절 속에서 '보구엔지압'장군이 지휘하는 베트남군의 공격을 받은 프랑스군은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후 항복하고 말았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의 장이 처절하게 펼쳐졌다고 할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안중근 의사(1879~1910)는 순국하기 한 달 전쯤인 1910년 2월 여순 감옥에서 먹으로 '모사재인 성사재천'을 썼다. 일본의 침략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자신이지만 이를 성사시킨 것은 하늘이라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유사한 의미를 풍기는 일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청주시청의 지난 3일 화재 사건도그 사단은 작았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날 '재난에 강한 안전한 청주'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던 청주시는 당일5층 옥상 문서고에서 전기 누전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 직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짐으로써 청주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화재 당시 청 내에 있던 한범덕 시장이 화재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점도 구설수에 올랐다. 여기에다 시청 직원의 자살사건이 발생했고, 시의회의 예산조사특위와 관련된 직원이 암 선고를 받는 등 인재가 겹쳤다. 비단 청주시뿐만 아니라어느 자치단체나 기업 등의 새해 야심찬 출발 선언도 하늘이 보살피지 않으면 언제든지 도로에 그칠 수 있다는 메시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나라 전체로 볼 때에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4대강 사업도 그 예외가 아닐 터이다.

-그 하늘은 민의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가 개최한 'g20 서울 정상회의'는 대한민국 역사에 없었던 획기적인 '국가적 모사'라고 할 수 있다. 6.25전쟁 참화를 딛고 일어서 반세기 만에 '작은 거인'으로 성장한 한국이 전 세계 정상들을불러 모아놓고 지구촌의 중요 이슈를 거론, 일정한 합의를 이끌어 낸 이 회의는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g20 서울정상회담 전후로 형성되던 국운상승의 기회를 일류국가 진입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후속대책을 마련,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g20보고대회를 개최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대회는 주목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겠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이어 국가재난의 구제역 사태와 12.31 개각-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파동 등으로 g20은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역시 모사재인 성사재천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성사재천'의 그 하늘은 초자연적인 의미도 없지 않지만, 주권재민의 한국에서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 즉 백성의 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정이 민의를 얻지 못하면 성사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춘길 본사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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