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최대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대전에서 충격적인 '경찰관 모친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곳곳에서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도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건 배경과 과정 등이 세세히 보도되면서, '그까짓 돈으로 사람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는 의견은 물론, '해도 너무한다'는 등 비난 일색이 연일 온-오프라인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수사결과가 어떻든,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 남은 것은 상처와 탄식 뿐이다.

문제는 날로 지능화되고 흉포화되는 범죄스토리다. 증거인멸은 물론, 범행 수법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다면, 이 같은 범죄행각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일지 되돌아 볼 필요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련의 사건이 모방범죄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모방범죄 또한 영화나 tv, 추리소설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이 할리우드 폭력영화를 모방한 범죄라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백악관이나 수사당국은 영화인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단초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재발방지를 위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 오하이오주에서 일어난 모녀 살해사건 후 드라마 'csi'가 범죄자에게 어떤 학습효과를 주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다. 체포된 용의자는 범행 뒤 손에 묻은 피를 표백제로 완벽히 닦아내고, 시체를 쌌던 담요와 옷가지를 모두 불태웠다. 평소 자신이 csi 팬 임을 자처했던 그는 dna 채취로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 tv가 보여준 대로 뒤처리를 감행한 것이다.

이 밖에 피해자의 몸에 자신의dna가 묻었을까 봐 손가락 끝을 훼손한 사건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증거 인멸 방법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모방범죄가 된 사건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미국 테네시주에서 발생한 2인조 소년의 총격사건은 비디오게임의 영향을 받았고, 부산 여중생 사망 후 시신유기사건은 영화 '공공의 적'처럼 시신에 석회가루 뿌려 지문 등 증거은폐 효과 노렸다.

이와 관련, 경찰은 "혹시 묻었을지 모르는 지문이나 혈흔 등을 가리는 증거인멸의 수단으로 석회가루 등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증거를 없애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tv를 모방한 범죄도 잇따랐다.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 일명 '퍽치기' 수법을 본 뒤 부녀자들을 상대로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중학생. 이제 갓 14살밖에 되지 않는 소년이 인적이 드문 시간과 장소를 고르고, 담을 넘어 도망갈 수 있는 도주로까지 모두 면밀히 고려해 범행을 저지른 수법이 도저히 중학생의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접한 전문가들의 견해의 공통점은 '공공매체'인 매스미디어의 '자제'를 당부했다는 점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최응렬 교수는 "범죄 재연 프로그램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범죄를 학습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 "방송국에서 시청률을 이유로 범죄 수법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재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같은 학습효과가 100% 범죄행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행여 발생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선의의 취지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그로 인한 폐해 또한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사건 발생 열흘이 넘는 동안 경쟁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이들을 보며, 국민의 알 권리와 모를 권리를 생각했다면 지나친 기우였을까. 우리 모두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중식 대전본부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