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잔치인 설 연휴도 이제 끝이 났다. 설은 새해의 첫머리다. 그래서인가. 명절이면 으레 떠오르는 민족의 대이동, 고속도로 정체와 북적이는 귀성인파에도 훈훈한 정감이 느껴진다. 민족의 대이동은 바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의 모임을 상징한다.
어쩌면 가족은 새해 희망이다.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오순도순 담소를 나눈다. 이는 설만이 지닌 정겨운 모습이다. 새해 첫날엔 웃어른과 형제 간에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눈다. 지난해의 노고에 감사하고 새로운 한해의 희망찬 출발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설같이 정겨운 풍경이 있으랴.
올 설은 연휴내내 포근한 날씨였다. 그런데 즐거운 만남이어야 할 설이 웬걸 고단한 한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구제역 탓인가. 예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급기야 고향이 축산농가가 밀집된 지역이면 설날에 고향과 가족을 찾지 말아 달라는 기막힌 호소까지 들려왔다.
애지중지하던 농가 보물 1호인 가축이 건국 이래 최대인 300여 만 두 가깝게 줄줄이 생매장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눈물겨운 애통한 현실에 아직은 무사한 축산농가마저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파국에 그렇지 않아도 한파에 더욱 추위에 떨게 하였다.
글로벌시대에 외국여행도 잦아지고 외국인들과의 왕래도 빈번하다. 설상가상으로 기상이변과 환경오염은 연례행사처럼 가축전염병의 발생을 우려하게 한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예방하고 단속해야 할 일이었다.
구제역 청정지역을 지키기 위해 차단방역에 안간힘을 쏟아 온 충청도는 물론이요,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구제역은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상 혹한의 날씨에 더욱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은 무슨 연유일까.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구제역이 이젠 한계를 넘어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이번 구제역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축산농가일 것이다. 농정당국에서는 피해가축을 시가로 보상한다고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아픔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축을 잃은 재정적 손실 못지않게 정성을 다해 기르던 소와 돼지를 일시에 살처분시킨데서 온 충격과 매일같이 땀 흘려 일해 왔던 삶의 터전이 없어진데 대한 허탈감이 그들의 넋을 잃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구제역 차단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늘어나는 피해 농가에 대한 축산진흥대책도 조속히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소와 돼지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날 경우 우리나라의 축산업은 그 기초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한 파장은 농산업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구제역 피해농가가 영농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구제역 여파로 재래시장과 관광지에 인파가 통제되어 상점과 식당가에서는 생계의 위협을 주고 그 여파가 연말연시와 설 대목까지 이어져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지역경제마저 꽁꽁 얼어붙고 있다 .
꽃피고 새우는 따뜻한 봄기운이 오기 전에 구제역이 진정되고 종식되어 실의와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뛰는 희망찬 신묘년 새봄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특히 살을 에는 칼바람속에서 방역과 살처분 작업을 하는 격무로 순직하거나 부상당하고 공포와 스트레스에 고통을 겪는 공무원들의 심신의 쾌유를 기원하며, 앞으로 재발방지에 혁명적이고 항구적인 방안과 대책들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얼마전 공중파를 통해 살처분 현장을 보며 가슴 아린 눈물을 흘렸다. '살처분'이라는 방역수단 말고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하니 그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수백 마리의 동물들에게 약물을 주입해야 하는 수의사들의 마음은 얼마나 충격적일 것인가. 동물 시체의 배를 일일이 갈라 매몰하고 살아있는 돼지를 생매장해야만 하는 공무원들, 자식처럼 기르던 가축들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봐야하는 축산농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위로할까 싶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에는 국민과 정부가 합심해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구제역 종식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우리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지만,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축산농가와 온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기대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성공과 실패,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그동안 애써 쌓은 노력들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축산물의 위상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위대한 정신과 저력을 살려 구제역을 극복하는데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어야 할 일이다. 구제역 없는 즐거운 명절을 소망해 본다.
/김정열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