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은 사람이 키운 재앙

나는 돼지입니다. 그냥 돼지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를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구제역 사태로 제명에 살지 못하고 생매장당한 300만마리가 넘는 돼지 중의 하나입니다. 첫 발생한 지 두달 정도 됐지만 전체 사육두수의 25%가량이 전국 수천군데의 공동묘지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소는 덜하지만 우리 동족인 돼지는 그야말로 씨가 마를 지경이 될 터인데 다행히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어 떼죽음의 횡액은 피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구제역이 뭡니까. 그것은 우리같이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소나 돼지. 사슴 염소 등 동물류에게 발생되는 급성 전염병 아닌가요?.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사람이 옷이나 차량 등에 구제역 균을 묻히고 이리저리 다니면 퍼지는 특성으로강추위가 계속된 이번 겨울 방역 때문에 공무원을 비롯한 군, 경찰, 민간자원봉사자 등이 꽁꽁 언 소독약 호스를 녹이고 시린손을 비비면서 생난리를 치렀지요. 그 과정에서 과로로 숨진 사람도 있었고 다친 사람들도 적지않다고 하니 우리 때문에참 고생이 많습니다. 특히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돼지나 소 등을 살처분하거나 사지로 몰아넣는 험한 일을 하는 바람에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라는정신질환을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볼 때 동정심 마저 생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규정상 구제역 발생지 500m 내의 모든 가축들을 반드시 '살처분'해야 됨에 따라 포크레인 등으로 흙구덩이의 사지로 내몰리는 우리의 절체절명함에는 미치지 못 할것입니다. 병에 걸린 돼지와 한집에 산다고 ,아니면 이웃에 산다는 그 죄로 몽땅 생을 마감해야 함을 볼 때인간들의 전쟁 참혹사인 2차대전 독일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와 다른게 무엇입니까.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제역 안 걸린 소 돼지도 꼭 그렇게 파묻어야 하느냐는 비탄과 안타까움의 말들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과학적으로도 56도에서 30분,76도에서는 단 7초만 익히면 우리의 육신을 인간이 섭취해도 아무 탈이 없다고 하는데 너무 쓰나미처럼 우리를 해치우는 것이 아닌지요. 우리도 그렇게 죽느니 병에 안걸린동족들은 사람들에게 육보시라도 하고 가면 좋을 것 을… .우리야 어차피 태어날 때 사람을 위해 내 한목숨 내놓게 돼있는 운명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구덩이에 밀어넣기 바쁘더군요. 이렇게 수백, 수천마리가 함께 비닐막 미끄럼을 타고 구덩이에 처박힌 뒤 흙에 파묻혀 숨을 쉬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는것은 정말 끔직합니다.농장주들 중에서도 "모돈(母豚)한마리가 구제역에 걸렸다고 해도 모돈과 자돈 수천마리를 싹쓸이 매몰하는 최선이냐"는 반발이 나온다면서요. 대통령이란 분도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소와 돼지를 죽여야 하느냐"고 답답해 했다지요?
그렇다 치고 기왕 묻었으면 잘 묻어줘야지 대충대충해서 사체 침출수 피해니 하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 묏자리 좀 잘써주면 어디 덧납니까. 지하수니 토양 오염이 우리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 획일적이고 무계획적인 당신들의 행정난맥상으로 빚어진 재앙 아닙니까. 대충대충의 응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구제역 발생 초기 대응 못해 이 지경 만들어놓고 환경대재앙이니 뭐니 해서 재점검하고 다시 차단벽을 쌓고 흙을 더 덮고, 심지어 병균 옮기기전에 태워야 한다는 등 법석인데 이는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입니다.
몇몇 단체가 우리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 것은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딱하게 여기는 것은 소잃고 외양간도 못고치는 현실입니다. 미흡한 수습과정을 놓고 책임론 공방이 벌어지는 한심한 작태 때문에 민심이 동요하고 그것이 정권의 근간까지 흔들리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게 하려면 늦긴해도 사후 처리와 향후 재발방지, 그리고 맹신하는 매뉴얼 행정을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미물들의 가당찮은 소리라 치부하지 말고 추후에 또 생길지 모르는 우리 돼지들의 생죽음을 더 이상 저승에서 보고싶지 않은 혼백들의 절규로 받아들여 주기 바랍니다.

/이정 본보 편집국장

▲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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