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의 누보로망은 1950년대 중 후반부터 약 10년 간 프랑스 소설의 일련의 혁신적인 경향을 지칭한다. 누보로망은 함께 활동하던 작가들이 내건 슬로건이나 선언도 아니며 엄밀한 의미의 학파나 사조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각자 독자적으로 창작활동을 해오던 몇몇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기존소설의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소설 형태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누보로망 이전 플로베르나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나 러시아와 영국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미 소설의 변혁은 시도되었다. 하지만 누보로망에 와서는 그 이전의 소설의 부분적인 혁신의 움직임이 소설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발전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사르트르가 사로트의 <미지인의 초상화(1948)> 서문에서 이 작품을 반反소설(앙티로망)이라고 명명한 뒤, 미뉘출판사에서 주로 작품을 내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비평가 앙리오가 누보로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후일 일반적으로 이들 소설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다.

누보로망로 나탈리 사로트, 클로드 시몽, 알랭 로브그리예, 미셸 뷔토르의 네 작가가 일반적으로 꼽힌다. 사로트(1900-1999)는 타인과 세상과 주고받는 자극과 반응에 의해 인간의 의식 속에 약한 진폭으로 떨리는 보이지 않는 "생성 상태의 움직임"을 탐색하였으며, 로브그리예(1922-2008)는 자유로운 눈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보며 '단단하게, 변질되지 않고 영원히 현존한 채로 여기 있는 사물들을 확인'하고자 시도한다. 뷔토르는 (1926-)는 "소설이란, 대단히 느리면서도 불가피하게, 서사적이며 동시에 교훈적인 일종의 새로운 시를 향해 진화"한다고 확신하며 '소설의 시학'을 추구하면서 세계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추구한다. 시몽 (1913-2005)은 뚜렷한 개성도 없는 작중인물들과 거의 중요하지 않은 주제들을 통해 일관이지 않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는 현실의 특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파헤친다. 상이한 이들 작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변화된 현실의 시대정신을 담는 소설 장르를 추구하는 노력의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누보로망은 우선 그럴듯하게 묘사되어온 불변하는 본성의 전통적인 인물을 거부한다. 누보로망에 아예 인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은 더 이상 인물의 이름, 나이, 성격, 외모, 가족이나 직업, 그들의 행위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누보로망은 실제로 존재하게끔 꾸며진 인물을 해체하고 현실의 불투명한 인간본성을 파헤친다.

누보로망은 또한 정연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를 거부한다. 누보로망의 시간은 물리적인 사건의 시간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의식의 시간이며, 순환적이고 분할된 서술 진행의 잠재적인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서술의 입체감이 소설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이처럼 이야기할만한 사건이 없거나 있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채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누보로망은 독자가 상상력으로 퍼즐처럼 불연속적인 파편들을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전통적인 소설기법과 결별하고 인물, 사건, 시공간적 배경이 불투명해진 새로운 소설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표현할 수 있는 소설의 형태를 창조하고, 소설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힘을 탐구한다. 로브그리예가 말한 것처럼 "소설은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탐구하고 있는 것은 소설 자체인 것이다."

문학사의 누보로망 시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기존문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문학의 시도는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해결의 시작이다. 지금도 새로운 소설의 파장은 계속 번져가고 있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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