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형할인마트의 '통큰'이라고 이름 붙인 마케팅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치킨으로부터 시작한 이 판매 전략이 컴퓨터로, tv로까지 이어지면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가을쯤인가. 기존 치킨 값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시장에 선보였을 때의 반향은 이름이 주는 발상만큼이나 뜨겁고 놀라웠다. 각 매장마다 한정된 수량을 공급하는 까닭에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선 고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보도는 예견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먹기 위해 치킨을 사본 적이 거의 없는 나조차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관련업계의 반발로 불과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지만 기발한 착상만큼은 높이 살만한 것이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영업 전략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광고를 통해 이 내용을 접했을 때 느꼈던 최초의 감상은 매우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통 큰'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강하게 어필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한 번 통 크게 살고 싶은데 우리네 소시민의 삶은 어떠한가. 생활의 반경 속에 갇혀 옹색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여유를 즐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멋지게 한 턱 쏘고 싶은데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꽁무니를 빼고 있지 않은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아내에게, 또는 동료에게 통 크게 양보하며 아량을 베풀고 싶은데 그게 어디 생각만큼 쉬운 일인가.

때맞춰 아픈 곳을 찔러온 이 전략은 예리하기도 했지만 내 안에 감추어진 페이소스를 자극하는데 일조하였다. 울고 싶은 차에 뺨을 때려준 격이라고나 할까. 지나친 견강부회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나의 감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시야를 잠시 돌려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 통 큰 지도자의 등장이 지금처럼 아쉬운 적이 있었을까. 난마처럼 얽힌 시대의 담론들을 통 크게 해결할 길은 없는 것일까. 수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고 하지만, 정작 편향된 시각에 갇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지도자의 그릇을 통 크게 키울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머물게 되면 답답해지는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얼마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충북생명평화회의의 도청 앞 150만 배 시위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갈등 양상 중 하나이다. 4대강 사업의 재검토를 내세운 지사의 공약을 이행하라는 요구가 문제의 출발점인데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역 발전을 원하는 주민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난감한 입장일 수 있으나 근본에 입각하여 정도(正道)를 본다면 지사의 통 큰 결단이 우선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지도자들이 통 크게 합의하여 개학과 더불어 전면 실시된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그런 면에서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기업의 발칙한 판매 전략으로부터 상상으로 이어진 나의 갈망이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형편과 도량을 더욱 키워 가정에서, 일터에서, 만나고 부딪치는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통 크게 베풀고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3월의 저녁 햇살을 가슴에 담는다.




/김홍성 청주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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