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 품위 있는 마지막 삶에 대한 상념

[건강칼럼] 홍세용 진천 성모병원 신장내과장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사람의 평균 기대 수명은 2018년 기준 82.7세로 OECD 국가들의 평균 수명인 80.7세보다 2년이 길다. 이는 소득 수준 향상과 의료기술 발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 받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생 70 고래 희 라는 말은 용도 폐기된 지 오래 되었고 70대가 경로당에 가면 물 떠오고 청소하고 80, 90대 어르신들 앞에서 애들 노릇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곱게 나이 드신 70대 초반의 노인이 지하철 경로석에 앉았다가는 80, 90대 어르신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면서 유병율도 동반하여 증가하기 때문에 실제로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삶의 기간, 즉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70.4세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끝자락 10년가량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는 말이다. 생로병사의 숙명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면 고령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마지막 10여 년 동안의 삶의 질에 대하여 개인이나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혹은 범 정부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임종이 자기가 살던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고 숨을 거두면 장례식장으로 옮겨 조문 절차를 거치고 영구차에 실려 이세상과의 이별을 고하게 된다. 요양병원 가는 길은 이승과 저승사이에 놓여있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인 셈이다.

필자는 한평생을 대학병원에서 근무 하다가 최근 지방에 있는 준 종합병원으로 옮겨온 나이가 좀 든 내과의사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요양원 혹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전원 오신 환자분들도 많고 본인이 요양병원에 가는 것을 극구 반대하거나 가족들이 차마 요양병원에 보낼 수가 없어 장기간 입원시킨 경우도 적지 않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걸어서 퇴원할 것이라는 희망 없이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노인 환자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노후에 장기간 입원하여 회복의 가능성 보다는 현상 유지가 목표인 환자들은 대부분 대소변을 직접 처리하지 못하거나 남의 도움 없이는 식사를 잘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누워서 지내다 보면 욕창이 생기거나 폐렴이 오게 되고 이들이 악화되면 패혈증으로 발전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다소간에 노인성 치매가 온다든지 처음부터 중추 신경질환으로 의식이 뚜렷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차라리 이런 상태가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이 뚜렷하면 장기 입원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간혹 장기 입원 환자 중에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노인 환자를 본다. 그분들의 희망은 집에 가는 것이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고 싶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집에는 간병을 할 사람이 없는데 집에 보내달라고 어린애처럼 졸라대며 통사정을 하는 환자를 볼 때는 마음이 무겁다. 아들에게 연락을 해 달라, 아니 딸에게 연락을 해 달라, 딸은 내 말을 들어줄 것이다 하며 부탁을 할 때는 당혹스럽다.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족들의 의료기관 방문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병실에 누어있는 환자들의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이쯤해서 우리 사회는 함께 고민 해봐야 할 것 같다. 기약 없이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면, 그리고 약간의 도움으로 나들이가 가능하다면, 하루 이틀, 아니면 한나절만이라도 집에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설혹 이 과정에서 병세가 악화되는 한이 있어도 자기가 살던 공간에 가서 잠시라도 머물며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 눠서 며칠 더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폐렴으로 장기간 격리병동에 입원중인 90세 할아버지 환자에게 습관처럼 회진을 다녀왔다. 내가 회진이랍시고 가서 드린 말씀은 병세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넋두리였다.

"어르신, 오늘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어르신도 어려서 쥐불놀이 많이 하셨나요? 밖에는 코로나라는 괴질이 번져서 사람들이 옛날처럼 모이지도 못하고 진천 시장 장날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온이 쌀쌀합니다만 곧 봄이 오고 새 싹들이 돋아날 겁니다. 어르신, 휴대폰 배터리 닳으면 간호사에게 충전해달라고 하세요."

거창하게 인권이라는 명제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병원 혹은 요양병원에 계시는 노인 환자 중에서 소위 행복 추구권을 박탈당하신 분들은 없는지 함께 고민 해볼 때다.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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