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 씻자고 시작..농촌돕기행사로 확대"<

"신자들과 함께 108산사를 찾아가 108번뇌를 씻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행사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습니다."

불교계에 새로운 신행(信行)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혜자(도선사 주지.55) 스님의 '108산사 순례단'이 결성 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9월 도선사에서 발대식을 가진 순례단은 이후 매월 전국 유명사찰을 돌며 기도회와 농촌살리기운동 등을 펼치고있다.

처음 2천500여 명으로 출발한 순례단은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 지금은 3천500-4천 명 가량이 순례에 나선다. 이로 인해 순례단을 실은 수십 대의 관광버스행렬은 장관을 연출한다. 철도를 이용했던 지난 7월 안동 봉정사 순례행사에는 서울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전동차 54량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처럼 '108산사 순례단'은 종교행사와 관광을 결합한 불교계 최대 '히트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몇몇 사찰에서 이와 비슷한 순례단을 만드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혜자스님은 "지난해 5월 불자 108명과 함께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법문사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108산사를 찾아가 염불과 기도를 하면서 신심을 다지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하는 원력을 처음 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선묵 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도서출판 화남)의 출간을 앞둔 시점이었다. 전국의 주요 사찰을 시(詩)를 곁들여 소개한 이 책을 안내서로 삼아 불자들과 순례기도회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규모 순례단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스승인 청담(1902-1971.전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은 미래의 불교는 거리로 나가야 하며, 베풀고 나누면서 수행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시작한 순례기도회가 세 번째 순례지인 송광사에서 농촌을 돕는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냈습니다. 논산 관촉사 행사 때부터는 사찰 인근 군부대에 장병의 간식거리인 초코파이를 기증하고 있으며, 부안 내소사에서는 '환경지킴이' 발대식을 갖고 방문사찰 주변을 청소하는 등 행사가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혜자 스님은 해인사를 순례하고 나오는 길에 사찰 입구에서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지역 특산물 직거래 장터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이후 가는 곳마다산사 주변에 직거래 장터가 생겨 단시간에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지역경제에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혜자 스님은 "어떤 불자는 영암 도갑사를 순례한 뒤 구입한 쌀의 밥맛이 좋아 이후 택배로 그 지역의 쌀을 주문하는 등 직거래 장터의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큰 것같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후 어려움을 느끼는 농촌에 순례단이 조금이나 도움을 주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순례단이 산사를 방문할 때마다 한되씩 시주하는 공양미는 해당 사찰의 살림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송광사의 경우 공양미가 50-60가마 분량이나 되어 108산사 순례단 덕분에 월동준비를 거뜬히 끝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108산사 순례단을 이끌며 가는 곳마다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고 있는 혜자 스님은 "불교의 산타클로스로 불리는 중국의 포대화상(布袋和尙.?-916)은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부자들에게서 얻은 재물과 음식을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에게 나눠줬다"면서 "하늘을 지붕 삼고 구름을 이불 삼아 세상을 주유했던 포대화상처럼 번뇌 망상과 고통은 자루에 담고, 중생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나눠줄 수 있는 길을 찾아 순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108산사 순례는 매월 한 곳의 사찰을 방문할 경우 7-8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참가자들은 방문한 사찰의 이름이 새겨진 염주 알을 하나씩 받고 혜자 스님의 책 여백에 신행기록을 쓰는 방식으로 순례를 이어간다.

혜자 스님은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매월 빠뜨리지 않고 순례에 나서겠으며, 내년 3월께 금강산 신계사를 방문할 계획"이라면서 "순례 1주년을 맞아 이달 15일 충주 중앙탑 공원에서 불자 1만 5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 대법회 열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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