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공허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스럽게 여행하던 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래전에 필리핀 관광을 가서 뗏목을 탈 때,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노를 젓던 사공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흥겨운 율동과 함께 불렀다. “오빠는 강남스타일…….”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놀랍고도 자랑스러웠다. 요즈음도 우리말이 세계어가 되는 것이 많다. 불고기, 김치 같은 말은 긍지를 갖게 하지만, 갑질, 위선, 무능, 내로남불 등은 부정적인 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류 붐과 K팝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분에 ‘오빠’(oppa)와 ‘강남’(gangnam)은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한국어가 되었다. 전 세계 K팝 팬들은 BTS·블랙핑크 등의 노래를 따라 부르려 알파벳으로 한국어 노랫말을 적어 외운다고 한다. 로마자로 표기한 우리말 중 오래된 단어는 ‘불고기’(bulgogi)인데 외국인에게 “어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불고기’라고 했고, 김치(kimchi), 소주(soju), 온돌(ondol) 등도 우리 문화를 알리는 단어이다.

최근에 군부 쿠데타로 소중한 목숨도 희생하며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는 미얀마와 동남아 등지에서는 우리 드라마에 더빙(dubbing·외국어로 된 영화의 대사를 해당 언어로 바꾸어 다시 녹음하는 일)하지 않고, 자막을 달아 방영하는 덕분에 한국어 대사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각종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타고 있는, 미국 영화인데도 한국어 대사가 많은 미나리(Minari)도 자랑스럽다. 또한, 러시아에서 그랬듯이 그곳 거리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시내버스가 한글이 표기된 채 운행되고 있어 무척 신기하다. 우리 같으면 수입을 했더라도 말끔히 도색했을 텐데 동대문운동장, 고속터미널, 신설동, 중곡동, 태종대, 부산역 등 한국 관광 광고(?)를 하며 달린다니…….

부끄러운 우리 세태(世態)를 보여주는 말도 많다. 몇 해 전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을 때 ‘갑질’(gapjil)이 외신을 탄 것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우리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소식을 전하며 ‘내로남불’을 패인으로 꼽았다. ‘double standard’(이중 잣대)로 번역하지 않고 ‘naeronambul’ 그대로 썼다고 한다. 〇〇이란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불붙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여당의 이중 잣대’란 의미라고 한다. 선관위가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고 사용을 금지한 것도 보도되어 세계적으로 ‘내로남불’이 알려졌으니 너무 창피하다.

태권도(Taekwondo)처럼 희망차고 자랑스러운 세계어가 된 우리말이 많아지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내로남불’(naeronambul) 같은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의미의 말은 수치스럽다. ‘세계의 눈’은 항상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비리나 부도덕, 독버섯처럼 번지는 병폐는 하루속히 과감하게 고치고 쇄신하여, 정의롭고 공정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경제를 살리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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