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울려퍼진 총성으로 박정희 유신 독재가 마감되고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고들 들떠있을 때, 이제는 민주화의 길로 가는 일만 남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때, 그러나 1980년대의 저 밑바닥에는 비극이 배태돼 있었다.

신군부 세력들의 쿠데타로 독재정권은 원점으로 회귀해 자유와 인권을 차압해버렸다.

이에 저항하는 5·18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이 비극은 새나가면 안될 비밀이 돼 쉬쉬하며 묻혀버리거나, 혹은 반사회적인 폭도들의 광기로 매도됐다.

그때 대학생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으로, 이정표처럼 다가왔던 시인이 김수영이었다.

시인은 반주류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인물이다. 어느 시대건 전위에 서 있는 시인은 당대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들은 부재하는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노래하고,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를 노래한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수영이 그런 시인이었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47세가 되던 1968년 6월 16일, 서울 수유동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현실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대표작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눈', '폭포'가 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김수영의 시어들은 풍자와 해탈 사이를 오간다.

그의 시는 독재, 빈곤, 무지, 허위, 속물 근성을 사정없이 질타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정확하게 읽으려 노력한다.

김수영은 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통해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적 자아의 소심함과 비겁함조차 까발린다. 그에겐 일종의 고해성사였던 것이다.

1958년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서 그는 "모든 전위 문학(前衛文學)은 불온(不穩)하다"고 했다.  그는 한 시대의 '전위'에 서기 위해, 시대의 반동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반성을 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대를 읽지 못한다면, 시대를 정확히 읽으면서도 기득권에 기대어 시대적 양심을 버린다면, 어찌 그를 시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부재한 자유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시를 쓴 그런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969년 김수영의 사후 1주기에 맞춰 그의 무덤에는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이 시비에는 김수영이 죽기 보름 전에 쓴 '풀'이 육필(肉筆)로 새겨졌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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