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서 깊은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아리조나주립대,독일의 프라이푸르그대학 등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대학들을 가까이 접해 보니 비록 단편적이라 하더라도 지역사회와의 교감및 소통의 광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조경이 잘 된 캠퍼스가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 타운버스(우리 시내버스)가 학교안을 종횡무진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교정이나 잔디밭을 안방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도서관 등 학교시설도 상당부분 시민들에 개방되는가 하면 일부 단과대학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빌딩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피상적이긴 하지만 대학이 학문의 증진만 힘쓰는 것이 아니고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중추적인 기관으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러움을 갖게 됐다.

외국의 유명대학은 거의 그 도시의 명칭과 동일한 이름을 달고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학교나 학생, 그리고 지역주민들간에 상생과 공존의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서로 아끼다 보니 자연히 명문으로 도약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캠퍼스통합 ·재단영입 등 변혁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우리네 대학은 지역과 호흡하기 보다는 권위에 둘러싼 교수와 학생들만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주차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일반인에게 주차료를 받으며 대다수 건물은 지역민들에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은 그렇다 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건물이 지어지는 국립대도 납세자인 시민들에게 문을 잘 열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자기 몸을 내어 주더라도 주민들의 활용도를 높이는 게 학문의 도야를 이루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여전히 우리들의 대학은 문턱이 높다. 그렇다고 지역사회와 아주 담쌓고 지내는 것은 아니고 시늉은 내고 있지만 지역친화의 몸짓은 굼뜨기만 하다.

작금의 대학들은 질의 향상 보다 양의 팽창에 더 우선을 두는 경향이 짙다.학생수라든지, 아니면 건물의 크기나 높이 등을 학교의 자랑으로 내세우는 외모지상주의가 판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사립대의 재단 적립금이 수천억원에 달해도 그것을 자랑만 할 뿐이지 인재양성과 지역사회의 환원에 투자를 하는 몫은 극히 미약해 학내 구성원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곱지 않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공동체인식 갖는게 매우 중요


지금 지역에서는 대학들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충남대는 공주대와 공주교대를 통합해 재학생수만 3만여명에 가까운 초대형 국립대학으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충주대는 철도대와 살림을 합쳐 한국교통대라는 특성화 대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총남대의 경우 교명과 본부의 거점을 놓고 지역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양상이다.이는 그만큼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단과대 하나만 들어와도 그 동네의 풍경이 바뀌는 점을 비춰볼 때 이런 초대형 대학의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는냐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10여년 넘게 학내 진통을 겪고 있는 서원대는 이제 파고를 넘어 정상화의 힘든 발걸음을 옮겨놓는 단계이다. 관선이사 체제에서 늦어도 연내에는 새로운 재단이 영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그런 이유로 현 김준호총장의 역할이 기대되는 가운데 향후 계획대로 건실한 재단이 들어서고 학원을 재정비 한다면 서원대는 그동안 지역사회에 진 빚을 얼마간이라도 갚아야 하는 부담을 가져야 한다. 그 방법이야 재단과 학교의 수뇌부들이 결정할 사안이지만 적어도대학의 존재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넌더리가 난 다수의 주민들을 위무할 만큼의 실체적 행동을 구체화 하는 게 필요하다. 화합의 기치를 내걸은 소통의 통로를 찾는다거나 지역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의 제공과 지원 등이 그것일 수 있겠다.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학교가 먼저 지역을 끌어안아야 한다.그 중심에 교수들의 사고 전환이 우선되야 함은 물론이다.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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