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 현혹되어 잠시 차를 세우고 개울가로 다가갔다. 고인 듯이 맑게 흐르는 하천에 하늘빛이 푸르다. 낮게 구부러진 몇 그루의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벌판이 산으로 이어진다. 양손 엄지와 검지로 직사각형을 만들어 풍경을 사각형 안에 끌어 들인다. 액자 속의 명화다.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유독 가슴으로 파고든다. 마음이 여러 갈래다.

마른 모래밭에 가늘고 현란한 색깔의 뱀이 스르륵 기어간다. 한 낮의 모래밭은 갓 구워낸 빵의 속살처럼 포슬포슬하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뱀을 감고 있는 빨강 색과 초록색이 마티즈의 화폭을 연상 시킨다. 가슴을 서늘하게 위협하는 뱀을 보고도 눈길은 뱀을 따라갔다. 그 녀석이 나보다 더 놀란 듯하다. 재빨리 작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외마디 소리를 내며 모래사장에 깊은 하이힐 자국을 내고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 눈을 고정하고 다시 차 안으로 뛰어 들었다. 운전석에 올라서려는 순간 발밑이 움찔했다. 뱀이 점프라도 해서 차안으로 들어 올 것 같은 공포에 오금이 저렸다. 황망히 차 문을 닫았다. 뛰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차창을 통해 뱀이 들어간 그 곳을 다시 살폈다. 그래도 뱀인데 그 고운 색에 잠시라도 마음을 빼앗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행동주의 요법 중 체계적 둔감법을 공부하다가 지난 해 보았던 꽃뱀이 생각났다. 체계적 둔감법은 불안을 감소시키는 자극 요법이다. 가장 약한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에서부터 차례로 상상하도록 하여 불안 유발 자극을 제시한 다음 근육이완을 통해 불안을 제지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보았던 뱀은 징그럽거나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색깔 또한 꽃처럼 아름다웠다. 처음에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그저 곱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학습된 공포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객관적인 위협이나 위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불안이 올라왔다. 내가 뱀을 무서워하는 것인지 뱀이 무섭다는 생각이 뱀을 무섭게 여기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경험 된 불안과 공포였다.

우리의 기대가 우리의 느낌을 바꾼 다고 한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남성이 층계에서 6인치 못 위로 떨어져 못은 그의 부츠를 뚫고 거의 발등까지 파고들었다. 상상도 못할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동료들은 즉각 구급차에 태웠고, 구급차는 서둘러 그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못이 조금만 움직여도 그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기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은 모르핀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로 주로 말기 암 환자에게 처방하는 펜타닐을 추가 투여했다. 그러나 환자를 진정시키고 통증을 제어하며 그 남자의 부츠를 조심스럽게 벗겨냈을 때 그들은 놀라운 일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처하나 없이 환자의 발가락 사이로 못이 깔끔하게 지나갔던 것이다' 부츠를 관통한 못이 자신의 신체를 손상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청년은 모르핀보다 100배나 강한 진통제를 투여하고도 심한 고통을 느꼈었다. 그 청년이 기대하는 만큼 그 청년은 자신의 고통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이 종종 우리의 뇌를 속이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우리의 몸을 속인다는 것이다. 저절로 섬뜩한 큰 뱀이 아닌데 뱀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처럼 그 본질에 접하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지레 겁먹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두려움과 공포도 근육을 이완시켜 체계적으로 둔감화 훈련을 통해 극복 할 수 있듯이 학습된 경험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모든 일로부터 자유로운 판단을 끌어내고 싶다. 그런데 꽃뱀이라는 제목을 쓰는 순간 다른 뉘앙스가 왜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그냥 꽃뱀인데 말이다.




/유인순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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