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공공재(公共財)이다.그러나소유 구분은 양분된다. 국영이나 공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가 상법상 주식회사이거나 개인 소유이다. 그래도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 이외에 공공 발전과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집약된다.

철필로 긁은 먹지에 잉크롤러를 밀며 인쇄를 하고 납덩어리 판형에 신문을 찍던 시대를 거쳐 컴퓨터가 온라인을 통해 원격제어로 제작이 되고, 라디오 일변도에서 흑백 텔레비전과 칼러시대, 케이블에 이어 이제 종편이라는영상매체까지 급변의 디지털시대를 맞은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언론, 좁은 의미의 기자들이 물어다 오는 다양한 소식들은 세상의 얼굴이며 보편적 가치가 추구하는 결정체이다.

흔히 언론을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제4부라고 한다. 그러나 제도속에 명문화된 힘을 구사하는 국가기관과 달리 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다만 여론이라는 무형의 힘을 전달하는 특수성 때문에 같은 반열에서 취급받는 것 뿐이다.그러나 이것도 옛만 못하다.


-같은 사실에 다른 목소리


자가당착이지만 급증한 매체의 출현과 여론 형성과 전파의 다양성, 여기에 5부권력으로 조명받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발한 보폭 등 사방에서 날아오는 견제구로 때론 난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어떤 부류나 집단으로부터 거대 권력이라는 고루한 대접은 받고 싶지 않지만언론의 자존심인 감시와 견제의 기능에 대해서 호시탐담 촉(觸)을 들이대려는 것 역시 용인하기가 어렵다.

언론은 근본적으로 감시견(watch dog)의 역할에 충실하는 게 첫째 덕목이다.이 원칙속에 사회, 또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함은 곧 이를 어긴다는 것으로 종사자들은 골각(骨刻)하고 있다. 기자 신입이던 30여년전 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물론 그럴 것 이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다를 바가 없다고보는 이유는 이것이 언론의 바이블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시대적 소명의 부응, 국민의 계도같은 제4부의 기능이 중시되어야 함은 마땅하지만 특정 권력의 보초 역할을 하는 보호견(guard dog)이나애완견(lap dog).다 나악 반려견으로 언론이 추락하는 서글픈 장면도 심심치 않게 접해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인의 손에 감긴 목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순치되는, 그렇지 않으면 꼬리를 더 흔들어서라도 귀여움을 받으려는 본능적 행동들이 불쑥불쑥 돌출되는 작금의 세태는 같은 언론이라 하더라도 정체성에 대한 공유하지 못할 괴리와 접근 방식의 차이에 대한 혼돈이 깊어진다.


-감시견 역할 수행에 의문


동일한사안과 사실에 여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평가,분석해서 대중의 판단을 구하는 공개된 작업을 간단없이 하고 있는 언론이 자사이기, 또는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을 해도 제어할 방법이 없는 건 맞다. 그리고 여론이라는 것이 저울에 무게를 달 듯이 계량화 할 수 없는 관계로 자의적 판단에 의한 기자중심적이나 자사중심적이 될 수도 있지만 조작이 아닌 이상 부정적에 대한 팩트에 관해서는 원론에 입각해서 수정이나 시정의 행보를 같이 하는 게 존재의 이유가 될 법한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

흔히들 언론과 정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들 한다.이는 달리말하면 서로 견제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공생을 추구하는 야누스적인 관계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중앙정권이든, 지방정권이든 권력의 교체가 이뤄지면 그에 맞춰 순발력을 발휘하며 변신하는 언론이 생기게 마련이다. 더구나 중앙정치 무대나 지방정치 현장 대다수가 같은 프레임으로 구성된 경우는 불편부당의 뒷켠으로 기회주의적 발현이 노골화 될 조짐이 있으며 이는 언론계 바닥의합치와 보편성 지향의 틀을 와해시키는 위험요인이 된다.

여기에 꽤 현명하고 똑똑한 척 하며 언론을 이분시키려고 간교함과 술수를 부리는 세력에 부화뇌동 하는 양상이 빚어지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기보다는 영합에 의한 실리추구의 포장이 드러나보이는 것 같아 습쓸하다.아닌것은 아니라고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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