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여의 세월동안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랑이 넘쳐 '과거'에 빠져버린 사람처럼 살아왔다. 어찌 보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딱한 사람이기도 하고 한심스럽고 등신같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남들도 다 아는 것 가지고 알량하게 잘난 척 하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심은 아니었다. 옛말에 온고지신, 온고이지신이라고, 옛것에 비추어 오늘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었다. 여기서 옛것을 돌아 본 다 함은 고루한 과거로 복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비추어 더 좋은 방안을 찾자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인간적인 기준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본주의-휴머니즘의 정신 때문인 것이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호는 과거를 버리다 못해 내팽개치고 파괴하며 근대와 서양의 신기루를 쫒았다. 곳곳을 뚫고 파고 산업문명의 달콤함에만 빠졌다. 경제와 민주주의를 달성한 성공적인 나라라고 자아도취했고, 교만에 빠졌다. 국민 개개인들이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전차에 올라 타 거침없이 질주하고,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의 추태를 다 보여주고 있다. 잘 산다는 것이 물질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마음과 사회적 제도가 인간주의 원칙에 잘 합치해야 잘사는 것이고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 아닌가.

수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웰빙 열풍이 일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졌지만, 삶의 방식과 태도들도 바뀌어가고 있다. 산에 오르고 숲을 찾고 시간도 즐길 안빈낙도의 여유를 가지는 생활문화가 잡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웰빙문화가 시장경제적으로는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사회적 제도장치의 시스템으로 온전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지 염려스럽다. 모든 것이 돈으로 이루어지고 돈으로 평가되는 현실이다 보니, 웰빙이 강조되면 될 수록 금전적 욕망이 더욱 커지고 인간이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이 더 빈번해 지는 셈이다. 그를 확인해 주는 증거가 세계적 1위의 자살률과 이혼율, 사고율, 재해율이 아니던가. 이런 것들을 되짚어 보면 우리들의 경제성장과 선진국으로의 질주에는 인간기본의 정신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10년 내외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사례는 문화와 예능에서의 한류였다. 이제는 음식문화의 한류도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대단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과거와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이 고루하고 뒤떨어진 과거로의 회귀라고 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우리 세대가 과거를 울거 먹고 그 혜택을 맘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과들이 우리들을 자긍심을 갖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 오만에 빠지게도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잘 짚어봐야 한다.

우리 청주도 온고이지신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대단히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되고, 전통적이고, 건전 보수적인 것 같은데 그 중심이라 생각되는 줄기가 뚜렷이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파격적이고,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라고 단정하기는 거리가 멀다. 이중적이다. 너무 눈치를 보고, 눈치를 준다.

온고지신의 기준에서 볼 때 분명하고 맞다 하면 과단성이 있어도 흠이 되지 않고 용단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비겁하게 눈치보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과단성만 있고, 욕망과 신기루만 본다면 역사의 근본과인간중심 기본정신을 잃어버린 과오를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청주가 인구도 증가하고 시가지도 팽창하는 등,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성장 속에서 유구한 청주 천년역사의 중심을 상실하고, 이른바 메이크업으로 단장한 무늬만 역사문화도시로 만든다면 정체성을 뒤흔들어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청주에 청주의 중심을 물질적인 증거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정신으로 사람살기 좋은 고을, 사람들이 와서 살아보고 싶은 청주가 될 수 있도록 온고이지신하여야 할 것이다.



/정지성 문화사랑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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