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인제군 북면 용대리 신라고찰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의 정신적 고향이다. '님의 침묵'이 이곳에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했고 그의 유품 등이 내방객들의 눈길을 붙들고 있다. 이 사찰 극락보전앞 화엄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88년 11월 친구인 노태우대통령에 쫓겨와 2년여를 머물던 처소이다. 근세사에서 어쩌면 백담사는 만해보다 전 전대통령때문에 더 유명세를 탓는지도 모른다. 한용운의 호가 만해(卍海)이고 전두환 전대통령의 호가 일해(日海)이므로 한 건물에서 두갈래의 큰 바다가 조우를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화엄당 옆에는 전 전대통령이 머물때 일상을 찍은 몇장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도끼로 장작을 패는 모습이다.사진속의 주인공은 장작을 패면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며 도끼를 내리찍었을까. 자신을 이 심산유곡에 틀어박히게 만든 친구를 대상으로 했을까. 아니면 이 지경까지 되도록 자신을 보필하지 못한 측근들을 원망하면서 그랬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좋아하던 운동대신 체력이라도유지하려 했을까. 그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지만 복잡다단한 심경을 가지고 있던 것은 틀림없으리라 여겨진다.


-정직하면 사회정의는 구현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절대권력자가 어느 순간 범법자의 나락으로 처박혀 상상치도 못한 굴욕속의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부처님의 '마음 내려놓음'(放下心)을 직접 실천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사대부중이 사찰을 찾는 대개의 이유는 일시나마 저잣거리의 고민과 번뇌를 잊고 마음 비우는 시간의 인생여백을 갖고자 함 일 게다. 그만큼 고단한 삶에 짓눌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찰 경내 한 켠에는 몇개의 시비(詩碑)가 세워져있는데 고은시인의 싯귀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사찰이 설악산을 품고 있는 덕에 정상을 향해 갈 때의 힘든 순간이 주위 사물과 경관을 즐길 틈을 주지 않는 바 힘이 덜 드는 하산길에 비로서 풍경을 관조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면서 '그 꽃'은 비단 자태를 뽐내고 향기를 뿜는 실체일 수도 있겠지만 내면적으로는 평범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즐길수 있는 대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상에서의 낙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한 시인의 은유나 부처님 말씀의 '내려놓으라 함' 두가지 다 제시하는 화두는같지만 속세의 필부필남들이 이를 깨우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백담사를 뒤로 하고 영시암 오세암을 거치는 이른바 '순례의 길' 끝자락에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제일 잘 받는다는 봉정암이 나타난다. 이 암자는 휴일은 물론 주말에도 수많은 신도와 일반인들이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에서 백팔배, 또는 삼천배를 하며 마음속의 무엇인가를 기도하는 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대구 팔공산 갓바위는 입시의 효험을 얻으려는 학부모들의 기도처이지만 이곳은 생활속의 갖가지 난관과 곤경 극복을 비롯한 갈구, 희망 등의 본능적 영통함을 구하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절집이 주는 안온함과 무엇인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이상한 끌림이 있는 곳에 있는 동안, 채워지지 않는 욕심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지역걱정, 사람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는 분위기가 정말 고마웠다.


-절집에서 얻은 인생의 교훈


작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풍파와 관련, 지역 균열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벌어지는 왈가왈부 속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일부의 움직임에 우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가운데 자기 합리화를 위한 논리의 비약 등이 가져오는 위험성도 경고를 하게 된다. 정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정의가 무엇인가만 생각한다면선택의 폭은 간단명료 해진다. '자기 두레박 줄 짧은 줄 모르고 남의 우물 깊은 탓' 만 하는 우를 범하는 일도 이제 멈춰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니고 '남이 하면 더 잘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모두 향기로운 '그 꽃'을 보고 즐길수 있으리라 믿고싶다.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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