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동일사유력(同一思惟力)'이 있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사소하더라도 선용(先用)하면 명예가 보장된다. 이렇듯 인간에게 천부적 동일사유력이 있다는 점을, 선인들은 이미 갈파했다. 맹자는 '진심'에서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양능(良能)이며,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양지(良知)다"라고 말했다. 형제가 서로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여 밤에 보릿단을 옮겨놓다가 로 마주쳤다는 설화도 있다. 신숙주가 '팔준마부'에서, '불모이동(不謀而同) 즉 "그렇게 하려고 맘먹은 것은 아닌데 저절로 같아졌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외 다수가 사용했다.

'동일사유론(同一思惟論)'은 필자가 체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1970년대 초, 야생의 취나물, 달래, 씀바귀를 재배하여 판매하면, 이익이 높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그 무렵 도시 부동산 가격이 연일 천정부지로 급등했는데, 부동산에 투지하면 일확천금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는데, 실행한 사람들은 부를 얻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로 대학졸업논문을 쓰려고, 연구방향을 설정한 후 그 연구유무를 살펴보니, 이미 연구가 돼있었다. 조선 후기 문단에 중국 '공안파'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을, '담헌 이하곤 문학의 연구'에서 간략히 논급하고, 구곡(九曲)등 연구할 것이 많아 후일로 미뤄둔 사이, 강명관교수가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여 한권의 책으로 냈다. 현존 최고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은, 필자가 1989년 발견하여 1996년 최초로 논문을 발표?게재했으며,1997년 2월 '동양일보'에서 최초로 보도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kbs 1tv '역사추리'제작단이 촬영에 들어갔다. 필자의 논문이 출간되기 얼마 전, 후손을 통해 양아록을 본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고 kbs에 제보한 것이다.

동일사유론으로 볼 때, 명심할 사항은 새로운 사유와 연구자료를, 다른 사람들도 식견(識見)할 수 있기 때문에, 기록으로 정리해야한다. 대개 전화의 발명자가 '알렉산더 그레이험 벨'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일라이 그레이'도 전화를 발명했다. 1876년 2월 14일 그레이는 벨보다 조금 늦게 특허를 신청했기 때문에, 전화발명자는 벨로 알려져 왔다.

'개똥참외도 먼저 맡은 놈이 임자다', '차대가리와 그대가리는 먼저 디미는 놈이 임자다'라는 속언이 있다. 하찮은 것이라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며, 관행상 그 선점성을 인정한다. 논문도 게재 일자가 중요하다. 만일 필자가 양아록에 대해 1996년에 논문으로 발표? 게재하지 않았다면, 평생 통탄했을 것이다. 특허등록이 아니라도, 새로운 사유를 법칙? 원리화등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최초 등록? 기록자의 이름으로 그 업적을 공인받는다. 조선 태조의 4불가론, 이제마의 사상체질론, 이광사의 원교체, 이승만의 이라인 등이 있다. 근자의 유행어대로 '사(思) 고쳐서', '동일사유론'을 선용(善用)하여 자신과 세상을 선변(先變)하자.



/이상주 중원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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