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남아 선호사상이 팽배하였다. 그 당시는 태아의 성감별 및 선택적 낙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특정 지방에서는 남녀의 성비가 극도로 불균형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시절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였다. 어느 날 중학교 한문 시간에 선생님께서 '좋을 호(好)'는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설명을 듣고, 그 단어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적도 있다. 나는 어머니가 아들을 선호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생각하였다.그런데 최근의 과학 연구에 따르면 그 믿음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자녀가 없는 부부가 꽤 많다. 일부러 자식을 낳지 않고 맞벌이 부부로 풍족하게 지내는 딩크족들도 있지만, 자식을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불임 부부도 많다. 그런데 남성의 불임 원인 중 하나는 모계로부터 온 유전정보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최근 호주 모나쉬(monash) 대학교와 스웨덴 웁살라(uppsala)대학교의 공동연구팀은 과일에 붙어사는 파리(fruit fly)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수컷의 불임 원인이 모계로부터 유전된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 때문임을 규명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 발생 기관이다. 그리고 세포 안의 핵이 가진 유전정보와는 매우 다른 독립적인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핵 안에 존재하는 유전정보는 부계로부터 반이 오고, 모계로부터 반이 온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는 오로지 모계로부터만 전달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여 생명체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정자는 유전정보만 가지고 있지만, 난자는 세포이기 때문에 유전정보 뿐 아니라 미토콘드리아도 가지고 있다. 이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는 난자를 거쳐서 다시 새로 탄생하는 생명체에게 전달된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계속해서 자식에게로 전달해 주었으므로, 인류의 최초 여성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여성이 인류의 기원이라면 말이다. 이렇게 동일한 생명체 안에서 핵의 유전정보와 다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현상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이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세포내 공생설'을 제안하였다. 마치 진딧물이 개미에게 단물을 제공하고, 개미는 천적을 쫒아주는 것처럼 독립적인 생명체였던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원을 제공하고, 그 대신 다른 생명체의 세포 안에 공생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유전정보는 전달되는 과정에서 가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문제를 일으켜 여아에게 유전정보를 잘못 전달하면, 그 여아는 자식을 못 낳고 결국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채 멸종될 것이다. 이 때문에 여아에게 전달된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남아에게 전달된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는 문제를 일으켜도 그 문제는 그 세대에서 끝나게 된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를 통해서만 자식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성에게는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가 무해하도록 진화되었지만, 남성에게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 결과 남성에게 전달된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 중 약 10%는 남성의 불임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생식은 생명체에게 있어서 생존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불임은 생명체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아들이 불임이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어머니로부터 오며, 이러한 문제를 딸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는 과학적 현상을 보고,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성별은 남아가 아니라 여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아선호사상은 어머니의 본능에는 반하는 사고인 것이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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