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누가 `세계의 퍼스트 레이디' 그러면 몸이 막 오그라 들어요.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안되는데.."
뉴욕 맨해튼 이스트 허드슨 강변의 조용한 주택가인 `서톤 플레이스'.

지난 21일 유엔 총회에서 전폭적 지지 속에 5년 연임이 확정된 반기문 사무총장의 관저가 있는 곳이다.

촉촉한 이슬비가 내리던 24일 오후(현지시간) 관저 2층 응접실에 들어선 반 총장의 부인 유순택 여사는 온화하면서도 넉넉한 기품으로 기자를 맞았다.

"아이구 내가 이런 걸(인터뷰) 해 본 적이 없어서.."라고 서두를 꺼냈지만 조리 있는 말솜씨며 몸에 배인 겸양은 `부부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 사랑과 결혼에 골인해 올해로 40년째 동반자로 살아가는 노부부. 유 여사는 반 총장을 `우리 총장님', `총장', `그 양반' 등으로 호칭했다.

"이번 연임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국민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로 시작된 유 여사의 생애 첫 언론 인터뷰는 한 시간 가까이 진행 됐다.


=다음은 유 여사 일문 일답=
-- 반 총장께서 앞으로 5년을 더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하시게 됐다. 여사께서도 세계의 퍼스트 레이디 5년을 연장 받으신 셈이 됐고..

▲ 어디 가서 세계의 퍼스트 레이디 그러면 몸이 막 오그라 들고 그래요. 그런 자격이 안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두 분이 모두 겸손과 소탈함이 몸에 밴 것 같다. 반 총장도 역대 어느 사무총장보다 탈권위적인 분으로 평가 받고 있지 않나.

▲ 그런 게 또 가끔 가다 문제가 되기도 하죠. 카리스마가 없다고 (웃음)
-- 연임이 확정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2006년 10월 유엔본부에서 사무총장 수락연설할 때 지켜보면서 굉장히 감명 깊었는데 벌써 5년이 지났네요. 관저 수리 때문에 초기 10개월은 호텔 생활을 했고.. 그러고 보니 우리 총장님은 관저도 개보수하고 지금 유엔본부가 대규모 리모델링을 하고 있잖아요. 관저와 유엔본부를 모두 새로 꾸미는 첫 사무총장이네요.

37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이사도 수십번 다녔고 짐을 참 많이 쌌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큰 짐은 아니지만 수도 없이 여행가방을 싸야 해요. 한 달에도 몇번씩 외국 출장을 가니까 가방 싸고 풀고 하는 것이 일이에요. 앞으로는 더 많이 싸야 할 것 같아요. 대개 7-8일 여행가면 4-5개국을 다녀오는데 가는 지역이 겨울인 곳도 있고 여름인 곳도 있고 하니 기후에 맞게 옷가지를 싸야 하고..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외국 여행 다니면서 보면 남편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공한 한국을 예로 들어 어려운 나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이번 연임 과정에서 많은 한국 분들이 마음으로 성원하고 도와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 가정에서 반 총장은 어떤 분이신지.

▲ 항상 공적인 것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들 어렸을때는 아이들과 시간 좀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불평도 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항상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모델로 삼았던 것 같아요.

총장님은 성격이 자상한 편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이 문제가 있거나 하면 스스럼 없이 얘기도 하고 상의도 해 줬습니다.

-- 집에 들어오시면 어떻게 지내시나.

▲ 꼭 수험생 같이 생활합니다. 밤 12시쯤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나요. 여러 자료들을 모두 검토하고 소화해 내지 않으면 안되니까. 꼼꼼히 읽고 정리하고 꼭 모범 수험생 같아요. 토.일요일에는 주로 외국 정상들 하고 통화하느라 거의 시간을 보내고.

지난번 (총회)연설에서도 그렇고 어디 가서도 그렇고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그러는데 걱정돼요.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웃음) 제발 좀 지금 같이만 한다고 하면 안되겠느냐고 그랬다니까요.

-- 유엔 사무총장이 아닌 가장으로서 점수를 주신다면
▲ 어려운 질문인데... 50점은 너무 박한 것 같고 70점 정도(웃음)
-- 세 자녀들을 교육하실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 저희 때는 세대가 달라서 아이들을 그렇게 푸시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잘 자라줘서 고맙지요.

-- 지난 4년 반 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속상했던 적은 언제인가.

▲ 총장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그냥.... 폄하하는 그런 기사를 보면 억울하고 속상했지요. (이 대목에서 유 여사는 잠시 비감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일부 서방 언론들은 반 총장 임기 중반 무렵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중국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또 너무 일이 많으니까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또 행사에 갔다가 집에와서 쌓인 자료를 읽어야 하고.. 그럴 때는 `안됐다' 하는 생각도 들고, 건강을 지켜야 하는데 무리하지 말라는 말도 합니다.

-- 총장님은 일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시던데
▲ 그렇죠. 보람을 느끼고 일에서 에너지도 받고 하니까.

-- 남편인 반 총장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는 언제였나.

▲ 2009년 1월 가자 전쟁때 셔틀 외교를 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직접 가자에 들어 가서 폭탄맞은 건물 앞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때 연기 속에서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연설한 것이 외국 방송에도 많이 나왔어요. 그러고 집에 돌아왔는데 목이 완전히 잠겨서 말을 하기도 힘들어 하더라구요. 연기를 많이 마시고 큰 소리로 연설해서...

또 코트디부아르 사태때 외국정상들하고 수도 없이 통화하면서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도 기억에 남고 반대가 심했지만 4개 유엔 여성 기구를 합쳐서 `유엔 여성' 통합 기구를 출범시킨 것도 보람된 일로 꼽을 수 있겠죠.

-- 사무총장의 배우자로서 외국 출장 가실때 자주 동행 하시나.

▲ 재난 재해 지역이나 분쟁 지역 같은 곳은 비행기 편도 그렇고 해서 같이 못가지만 대부분은 함께 갑니다. 아프리카 지역 같은 곳 갈때 거의 따라갔어요. 에티오피아는 매년 가고, 카메룬, 브룬디, 말라위, 케냐 등 수없이 많은 나라들을 다녔어요. 그런 곳 가면 마치 한국전 끝난 직후의 상황을 보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지역인데 그런 곳에서 보람을 갖고 일하는 유엔 직원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 집니다.

처음 동반해 갔을 때는 박물관이나 쇼핑센터 같은 곳을 어레인지 해 넣더라구요. 그런데 현지 가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유엔에서 도와주는 여성 쉼터나 관련 기관, 병원 같은 곳을 방문하는 일정을 넣으라고 했죠. 제가 가는 게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 한테 격려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반 총장 외교 스타일을 `조용한 외교'라고들 말하는데.

▲ `조용한 외교' 그것은 좀.. 할 말을 안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그건 좀 아니다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 양반은 그냥 상대방 자존심 챙겨주면서 끈질기게 설득해서 좋은 결과 끌어내는 사람이에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 여사의 내조 스타일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 내조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특별한 그런 것은 없어요. 그냥 제 남편이 공직 생활을 오래 했으니 남편의 커리어에 해가 되지 않게 그렇게 조심하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죠.

다만 유엔에서는 192개국 대사들이 와 있고 그 부인들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합니다. 문화.자선 등 여러 행사가 많고 그런 행사에는 꼭 가려고 하고 그렇게 해 왔어요.

또 유엔에서 하는 여성이나 질병 등과 관련된 행사에 패널로 참석하기도 하고, 자폐아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총회에 참석하는 정상 부인들하고도 매년 자폐아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도 갖고 여러가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자폐증은 예전에는 숨겨놓고 그랬는데, 어릴 때 발견해서 치료하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자폐아에 대한 관심은 언제 부터 갖게 됐나.

▲ 저의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봤고, 여기 유엔에 와서 첫 해에 정상 부인들 초청을 받아서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한국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흔히 하지 않습니까. 지금 여성들의 역할 만큼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드물죠. 유엔은 물론이고 전세계 각지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총장님도 가능하면 여성을 많이 뽑으려고 하죠(웃음). 지금 유엔 고위직 가운데 여성 비율이 40%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우수한 잠재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더욱 개발하고 발휘해서 사회 각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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