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잘 이해되지 않던 단어중 하나가 ‘6.25난리’였다. 학교에서는 '6.25사변'이라고 배웠는데, 왜 어른들은 ‘난리’라는 말을 쓰는 걸까? 인민군이 쳐들어와 우리 집 소를 잡아먹고, 조부모를 제외한 온 가족이 오대라는 곳으로 피난 갔었으며(나중에 알고 보니 보은군 산외면 오대리), 또 피난에서 돌아온 뒤에는 국군이 사랑채와 건넌방, 윗방 등에서 잠자고 그들에게 밥해 먹이던 일 등을 말씀하시면서, 늘 ‘난리’라는 말을 사용하시곤 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지만, 선친이 북한의용군으로 끌려가다 도망쳐 왔고, 근동에서 수재로 알려졌던 둘째 고모부가 육군대위로서 실종되고, 셋째 당숙이 금화전투에서 전사해 당숙모가 유복자와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일 등은 귀가 따갑게 듣고 보아온 우리 집안의 6.25 역사다.

이렇게 '6.25사변', ‘6.25난리’ 라는 말에 익숙해져 성장했고,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6.25’ 대신 ‘한국전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알려지기로는, 80년대 이후 소위 진보진영의 학자나 학생들이 6.25사변을 분석한 외국책을 읽거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korean war’ 또는 ‘朝鮮戰爭’을 그대로 번역해 써오던 것이, 요즘은 학계와 출판계는 물론,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매체 등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은 아직도 낯설다. 나는 직접 6.25를 겪지 않은 전후세대이긴 하나, 그것이 남긴 상흔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또 매년 6.25.무렵 tv나 인터넷에서 당시의 참상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마주칠 때면, 그 당시 선배들이 어떻게 전투에 참가해 피흘리고, 남부여대(男負女戴)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는지 전율을 느낀다.

남한만 해도 100만 이상의 사망자, 약 20만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이 넘는 전쟁고아, 1천여만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든 6.25. 그리고,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북한 역시 150만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북한 김일성의 1950.6.25. 일요일 새벽 남침에 의해 야기된 것 아닌가.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보라. 거기 누워있는 4만 전사자들과 14만 여의 위패들을 보라. 그들의 피흘림을 어찌 모른 체 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생전 알지도 못하던 외국의 산하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미군 등 참전 16개국의 청년들을 생각한다면, 이 전쟁이 어째 내 나라의 것이 아닌 그저 ‘한국전쟁’이란 말인가.

정부의 공식문건은 지금도 '6.25사변'이라는 말을 쓰고, 국사교과서도 ‘6.25전쟁’이라는 말을 쓰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무분별하게 ‘한국전쟁’이라는 말로 마치 '6.25사변'이 남의 일인냥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근 정부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57.6%가 6.25의 발발연도를 모르고, 51.3%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성인그룹인 19~29세의 청년 절반이 넘는 55.1%가 6·25전쟁의 발발연도를 몰랐단다. 결국 서른 이전의 국민들은 어린아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6.25사변'을 잘 모르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이는 국사 및 안보교육의 소홀 뿐 아니라, 매년 6.25를 그저 행사로만 치부한 결과가 아닌가.

6.25를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 등 제3자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역사상 가장 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게는 ‘6.25’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 비극, 그 비참함, 그 고통의 피난길을 잊어서는안 된다. 이제 6.25의 전장에서 피흘렸던 분들, 피난길의 참혹한 체험을 한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남아 있대야 초·중학교 시절에 겪은 분들이다. 그들도 이미 70대다. 그 때의 그 처절함을, 그 비극을 후손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 국제법상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상태로 남아있는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6.25를 ‘6.25’로 부르며, 그날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한 길이다.



/유재풍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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