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수십 년 전 까까머리 학생 시절. 수업을 중단하고 선생님들에 이끌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 양쪽에 서서 그 길을 통과하는 마라톤 선수들에게 힘내라는 박수를 친 기억이 새롭다.

당시 서울서 부산까지 역전에서 바통터치를 하는 50년도 넘는 역사를 가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의 한 장면이다. 저마다 고향의 명예를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 건각들의 질주에 적지 않은 학생들이 동원돼 응원을 하는 게 당시에는 당연시됐었다.

특히 고향팀 선수가 지나갈 때는 그 열기가 더했음은 물론이다. 학생뿐 아니다. 주민들도 경찰 사이카의 사이렌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힘을 불어넣어 줬다. 지금처럼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접할 수 없었던 시대인 만큼 전조등을 밝힌 수많은 차량에 에워싸여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힘들게 뛰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이나 인간적인 접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신경, 냉담, 심지어 교통이 막힌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로 마라톤 대회 한번 치르려면 욕 먹을 것을 각오해야 할 정도다. 차보다 사람이 많았던 세상이 역전되고 나니 큰길에서 뛴다는 것이 일종의 모험이 돼버렸다. 그래도 그 누군가가 대회 멍석을 깔면 선수들이 나와 춤을 추고 또 그중에 누군가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 배출한 학교와 고향은 자랑스럽게 된다. 그러므로 대선수로의 꿈을 키우는 선수들에게는 주위의 격려와 성원이 무엇보다 보약이다.

지난 주말 서른 번째 치른 본사 주최 충청북도 시·군대항 역전마라톤 대회에서도 이 같은 대중의 무관심이 확연히 드러나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초등학교부터 일반부까지 시·군 대표들은 열탕의 날씨와 싸우면서 기록단축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지며 달렸다. 그 처절함에 가까운 모습을 보며 뭔가 알지 못할 뭉클함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치솟아 오기도 했다. 쓰러질 듯 하면서 골인 지점을 향해 혼신을 다하는 가냘픈 초등학교 선수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스포츠는 대중의 박수와 격려를 자양분 삼아 크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중은 갈수록 특정 종목에 대한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프로팀이 운영되고 있는 야구나 농구, 배구, 축구 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재미를 동반하는 원인도 있겠지만 이는 불균형 성장이라는 이면을 내포하고 있다. 신체를 움직이는 모든 체육 종목의 기본은 육상이다. 달리고(走),높이 뛰고(高),멀리 뛰는(跳)것이 육상의 3요소라면 대중의 환호와 박수는 제4요소가 되는 셈이다. 헌데 전국대회나 지역대회나 육상 트랙의 관중석은 항상 쓸쓸하다.

이제 두달도 남지 않은 대구 세계육상경기대회도 그래서 걱정스럽다.입장객판매가 저조해 조직위가 고민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9만석을 꽉 채운 경기장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진다. 세계 정상급의 우리나라 선수가 없어 관심을 못 끄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알고 보면 매우 재미있는게 바로 육상경기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미래의 육상 견인차는 바로 소소한 국내 대회를 통해 발굴되고 육성되는 것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아마추어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엘리트 선수의 디딤돌이 되는 대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육상 지도자들은 본사의 역전마라톤 대회 같은 대회를 중요시한다. 실제 충북이 전국 중장거리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경부 역전대회에서 12번 중 11번이나 우승을 하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있다고 지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즉 충북이 '한국의 케냐'라는 비유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우리 산업전반에 소위 3d업종이라는 부정적 풍향이 불고 있듯이 체육에도 위험하고 힘든 종목인 육상(특히 중장거리)이나 복싱 등은 선수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어렵게 발굴하고 정성 들여 키우고 있는 지도자들의 열정과 보살핌 속에 선수들은 하루하루 성장하고 미래의 꿈을 향해 뙤약볕 아래, 혹은 빗속을 뚫고 오늘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적어도 따뜻한 마음의 성원을 보내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