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상업고등학교가 명문인 시절이 있었다. 주로 베이비 부머세대들에게 해당되지만 상고 우수생들은 거의 은행에 진출을 했다. 그리고 별 탈이 없으면 지점장급까지 지낸 뒤 은퇴했다.당시 화이트칼라의 대명사격인 은행원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은 고졸을 밀어내고 대학졸업자들로 신입사원을 채우기 시작했다. 학력인플레의 신호탄이 올려진 셈이었다. 상대적으로 고졸은 설자리가 줄어들었다. 그후 얼마가 지난 후 상고·공고는 정보고,인터넷고,마이스터고 등으로 이름을 바꿔 전문계 학교가 됐다.취업위주의 교육을 열심히 해도 종전 처럼 금융기관 등을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 들어가는 것 이상 힘들게 됐다.그래서 제조업의 생산직으로 수요가 돌아섰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이런 판국에 3D 업종의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많지만 취업을 기피하는 한국적 특수현상이 일어났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느니 차라리 알바해서 용돈 버는 게 낫다는 사회적 굴절현상이 확대됐다.

-MB가 선도하는 학력파괴


이 제조업의 빈 자리를 외국산업연수생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 숫자가 60만명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 고졸자나 대졸자나 취업을 못해 난리가 났다. 취업난 해소가 주요 정책으로 대두됐다.나름대로 대안은 내놓고 있지만 원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여기에는 부모가 다 성장한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한국적 정서도 한몫하고 있다. 캥거루족, 헬리콥터족, 마마보이 등이 그 증거이다.

특히 해외유학을 이웃집 마실가듯이 여기는 현세태에 고졸은 더 이상 학력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천덕구러기가 되버린 듯 하다.

그러던 중 상고나온 대통령이 고졸 일자리 창출의 선봉장으로 나섰다.고졸 은행원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이번에 학력타파를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도 그 어느때와도 달랐다. 청와대가 움직이자 산업은행을 필두로 은행권이 3년간 2700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하고 뒤이어 대기업 공공기업 등도 대열에 섰다. 대졸취업은 뒷켠으로 밀렸다. 이번에 정말 또 한번 느끼지만 우리의 쓰나미 같은 몰아붙이기 정책과 순간적인 쏠림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대졸도 맥 못추는 취업시장에 고졸이라고 해서 가방끈 긴 그들을 넘지말라는 법도 없다.실제로 구석구석에는 숨은 보석같은 고졸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이번 고졸 취업의 확대기회를 환영만 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고졸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앞날의 보장도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이다.


-일시적 현상일땐 부작용 커


실제 은행의 경우 2년 비정규직이 대부분으로 2년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대졸자들에게 둘러싸인 환경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는냐는 점도 걱정이다.지금은 그렇다해도 임금이나 근무환경이 대졸자와의 격차가 있을 것 이라는 알게 될 것이다. 일부 은행이 고졸 채용 후 대학에 갈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고 한 것은 이같은 엄연한 현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나도 상고나왔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큰 격려가 되는 것은 맞지만 대통령은 그 뒤 명문대에 진학을 하고 유수의 기업에 들어가 입신양명을 한 인물이다. 그래서 꿈을 심어주는 롤 모델로서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그 말을 듣는 학생들은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은 가야지 하는 의지를 더 확고히 했을 것 같다. 당장은 아니지만 고졸로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가 녹녹치 않음을 그들인 줄 모르겠는가.아쉽게도 고졸이 최종학력인 대통령이 그랬다면 느낌표는 정말 달랐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나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장 같은 상고출신 금융계 거물의 덕담이 훨씬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여당발 대학등록금 반값 파동의 부산물이 바로 고졸취업의 확대라고 본다면 바 차제에 고졸의 90% 가까이가 대학졸업장을 받는 고학력 남발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그리고 현정권에서 반짝하고 마는 그런 것이 아닌 다음정권에서도 유지를 해야 진짜 고졸자들이 용기와 신뢰를 갖게됨은 자명하다.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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