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실화 바탕 '마루타' 22년만에 재출간"

장편소설 '마루타'로 유명한 소설가 정현웅 작가(63·사진)가 22년 만에 원작 5권을 개작해 '그리고, 마루타에게 묻다(전 2권, 아이프렌드)'로 재출간 했다. 일제시대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충성'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만주 관동군 소속 제 731부대의 잔혹한 생체 실험 현장을 고발한 이 소설은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사랑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작품으로 꾸준히 독자와 만나며 세대가 공감하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정현웅 작가를 만나 봤다. /편집자 주

―충청일보와 청주와의 인연은?
△나는 1949년 청주 사직동 무심천변에서 태어났다. 그때 아버지는 청주에서 양복점을 경영했고, 할아버지는 청주 변전소 소장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학교는 청주에서 다니지 않았지만, 어린 유년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고, 친인척이 청주에 있다 보니 청주는 기억 속에 각인된 산천이었다. 작가로 데뷔할 무렵 충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같이 문학을 한 동문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연재소설 요청이 들어왔던 것인데, 처음에 시작한 소설이 '장님악사'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역사소설 '소부리 야화'라는 의자왕 이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연재했는데'바람과 촛불'이라는 연애소설도 쓰고, '태백의 혼불'이라는 임진왜란 역사 소설도 연재했다. 그렇게 해서 20여 년간 한 매체에 6~7편인가 하는 최다 연재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한편을 연재하면 2~3년 걸렸으니, 한때는 거의 정현웅의 소설만 연재해서 충청일보 독자들은 소설이라면 정현웅만 기억난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루타'를재출간한 이유.
△소설 '마루타'는 1988년 5권으로 출간된 실화소설이다. 이는 있었던 이야기를 사실에 충실해서 소설화했다는 뜻인데, 그래서 기록적인 저널리즘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절판된 지도 십 년이 넘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읽고 서재의 책꽂이에 꽂아놓은 것을 보고 읽었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내놓는다.역사 고발이나 실화소설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어쨌든 소설은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적인 관점에서 개작을 했다. 새로 만든 책은 고발성이 많이 없어졌겠지만, 그렇다고 마루타의 끔찍한 실상을 뺀 것은 아니다. 다만, 전의 책처럼 잔인한 이야기를반복해서 나열하지는 않았다. 5권의 소설을 상·하 2권으로 줄여서 개작했고 제목은 '그리고, 마루타에게 묻다'로 했다.새로운 창작은 아니지만 개작을 하면서창작보다 더 어려운 것을 깨달았다.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처음에 소설을 구상할 때 주인공을 조신인 학도병으로 하려고 했지만, 제731부대 자료를 보니 철저한 보안으로 타 민족은 부대에서 근무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실화소설은 실제 이야기를 중요시해야 하기 때문에 순수 일본인 '요시다'로 했다. 다만, 민족적인 자존심이랄까, 한국 작가라는 입장에서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약 3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의 후손으로 설정했고, 그래서 상평통보가 상징적으로 계속 등장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것은 작가의 자존심에 불과할 뿐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가야시대로 올라가서 보면, 지금 일본인들의 조상은 우리 민족이 많다. 미개한 일본 땅에 가야, 백제, 신라 유민들이 가서 개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록에 보면 기원전 일본 사람은 전부 53만 명으로 본다. 당시 씨족국가로서약 100개 국가가 있었고 그 당시 한반도 민족은 약 200만 명으로 보고 있다.
독자 중에 일부에서는 왜 일본군 장교 '요시다'를 휴머니스트로 만들었느냐고 하면서 면죄부를 주려고 했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군 장교를 휴머니스트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휴머니스트 중에 일본군 장교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일본군이나 일본을 미워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사랑과 휴머니즘의 정신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 전체를 보면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연애 이야기와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문학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
△왜 문학을 선택했는지 물을 때마다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학교에서 가족에 대한 설문조자를 하면 나는 어머니의 직업난에 '사망'이라고 쓰고, 그것이 마치 무슨 직업이나 되는 것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는 어머니가 죽은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죽자 재출가해서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을 손바닥으로 눌러 가렸다. 옆에 있는 친구가 보면 큰일 난다는 듯이 조바심을 하면서 눌러 가렸는데 땀이 배어 그 종이가 찢어져 버렸다. 그 후에 나는 아이들에게묻지도 않는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의 어머니는 유명한 발레리나인데 지금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있으며 가끔 나에게네덜란드의 풍차도 있고, 교회 탑이 그려져 있는 그림엽서를 보내준다고 거짓말을 했다.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보낸 그림엽서를 보여준 일이 없다. 그것이 허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때부터 소설을 썼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상실과 그 애증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예술가는 타고나야 한다지만, 그것은 잘 모르겠고, 확실한 것은 나의 환경이 작가의 길을 걷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착 가는 작품이 있자면.
△주변에서 나의 대표작을 '마루타'라고 할 때마다기분이 좋지 않다. '마루타'는 나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유명하게 해준 것은 사실이지 만, 그보다 더 애착이 가는 '외디프스의 초상'도 있고, MBC에 24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한 '전쟁과 사랑'이라는 소설이 마루타보다 더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마루타'가 워낙 많이 팔리다 보니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는가 보다.
애착 가는 작품은 역시 나를 작가로 만들어 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작품은 처녀작으로 외디프스의 신화를 응용한장편소설 '외디프스의 초상'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나처럼어머니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외디프스 콤플렉스에 걸린다.그래서 주인공은 성장해서 정상적인 연애를 못한다. 모든 여자를 두 가지 중 하나로 보는데, 하나는 어머니처럼 고결하고 숭고한 여자로 보고, 다른 하나는 창녀로 본다. 그런데 어머니로 보는 여자한테는 성적인 느낌도 없고 연애도 제대로 안 되는 장애를 일으킨다. 나도 한때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체험을 소설화시킨 것이다. 이 소설은 최초라는 점에서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만, 문학적인 열정이 치열한 작품이고,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는 다시 개작해서 세상에 내놓으려고 한다.

―작품 활동 계획과 작가로서의 소신.
△앞으로 쓰려고 구상하는 작품으로는 무당 이야기라든지, 샤머니즘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고 3 어머니가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하는 중년 부인의 내면의 세계를 소설화할 계획이다. 작가 소신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다른 직업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중요하겠지만, 특히 소설가는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다. 그래서 단순히 직업 개념을 넘어서 순교자적인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정의에 앞장서고, 인류의 행복과 국민의 자유에 대해 정신적인 지주가 돼야 한다. 내 말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이 아니고 작품으로 하라는 것이다.그럼 당신은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작가란 직업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도다.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약 70년 전에 있었던 일본군 제731부대의 인간 생체실험 사실은 한 시대의 잘못된 역사이고 비극이다.독일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한 것과 비슷한 일인데, 2차 대전 후에 독일은 죄를 인정하며 반성하고 전범자를 처형하고, 독일의 브란트 수상이 유태인이 학살당한 아우스비치 수용소에 세워져 있는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일이 있다. 그 독일 수상은 자기 전 세대의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런데, 일본은 빌기는커녕, 아직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자칫하면 일본의 미래 세대는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 독일과 비교해서 보니 좀 깎아내린 점은 있지만, 교과서 왜곡은 주권이나 국력이 아니다. 내가 마루타를 언급하면서 현재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나 과거 침략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과거 마루타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지금의 태도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여행 당시 어느 기념관에 그들이 2차 대전 때 학살당한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그런데, 용서를 베푸는 것은 반성하는 자에게 해당한다. 나는 일본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말자, 그리고 잊지도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안순자기자 asj1322@ccdailynews.com


<작품연보>
1949년 청주 출생
1974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현상공모 수상(시나리오 '골고다의 언덕')
1976년 중앙일보사 제6회 도의문학 저작상 수상(장편소설 '외디프스의 초상')
1980년 7월호 현대문학지 단편소설 '사자'의 목소리' 추천
1984년 1월호 단편소설 '잃어버린 세대'추천완료, 문단 데뷔
1986년 한국추리작가협회 제정 추리문학상 수상(장편소설 '여대생 살인사건')
1988년 '마루타' 5권 출간
2011년 7월 '마루타' 개작 '그리고, 마루타에게 묻다' 2권 재출간

장편소설 '그리고 촛불처럼 타다' KBS 2TV,10부작 미니시리즈 방영,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MBC TV, 24부작 미니시리즈 방영, 장편소설 '족보', '다라니', '그대 아직도 거기에 있는가', '카인과 아벨은형제였다'등 60여 편.단편소설집 '불감시대' , '어느 여공의 죽음', 전기소설 '사랑과 예술(운보 김기창 일대기)', '박수근의 생애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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